1960년 4ㆍ19혁명 당시 치안총수(경찰국장)를 역임하다 부정선거를 주도한 혐의로 사형구형을 받은 뒤 원양어업과 금융 재벌로 재기했던 이강학 고려통상 명예회장이 22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2세.
이 회장의 삶은 파란만장한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 그는 35세의 젊은 나이로 대한민국 제15대 치안총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3ㆍ15 부정선거를 주도한 혐의로 사형구형을 받아야 했다. 그는 무기징역이 확정된 후 4년형을 살고 나온 후 동대문시장에서 포목장사를 시작으로 제2의 인생을 출발한다.
그가 직접 부를 축적한 계기는 원양어업 사업이다. 1966년 해외산업이란 회사를 설립한 그는 한 척의 용선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으로부터 참치를 잡아 일본으로 전량을 수출하면서 부를 축적해 71년에는 서울 명동의 대연각 호텔을 인수했다.
이때부터 그는 재계 인사로 활동의 폭을 넓혀가며 78년 대아증권(고려증권 전신)을 인수했고, 83년에는 반도투금(고려종금)을 설립했다. 또 동광약품과 명동 계양빌딩 등을 잇따라 인수해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고려종금과 고려증권, 고려생명 등 주축기업 3인방이 지급여력 부족으로 영업정지 명령을 받으면서 몰락했다. 유족으로 부인 김기수씨와 1남2녀가 있다.
한편 고 이 회장의 유족들은 장례식을 조용히 치르기로 하고 부음을 지인들에게만 알렸다. 최상록 고려통상 사장은 24일“고인께서 생전에 사망하면 장례를 간소하게 치러줄 것을 당부해 그 뜻에 따라 친지와 지인에게만 개별통보를 했다”고 말했다.
장학만 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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