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연언어 안에 화자의 성별에 따른 방언(일종의 사회방언)이 있을 수 있을까? 이를테면 여성이 쓰는 한국어와 남성이 쓰는 한국어는 다를까? 그렇다. 그러나 한국어의 경우에 그 차이는 매우 작아서 찬찬히 살피지 않으면 알아채기 어렵다. 실상 대부분의 자연언어에서 이런 성적 방언(genderlect)은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아메리카 원주민 언어들 가운데 일부는 화자의 성을 문법 전반의 체계적 범주로 삼고 있어서 언어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바 있다. 동아시아 언어들 가운데선 일본어가 이런 성적 방언을 제법 간직하고 있다.
한국어의 성적 방언으로 흔히 거론되는 예는 일부 친족명칭이다. 여성화자는 같은 성의 손위 동기(同氣)나 선배를 ‘언니’라 부르고, 다른 성의 손위 동기나 선배를 ‘오빠’라 부른다. 반면에 남성화자는 같은 성의 손위 동기나 선배를 ‘형’이라 부르고, 다른 성의 손위 동기나 선배를 ‘누나’라 부른다. 물론 이 규범이 돌처럼 단단한 것은 아니다. 20세기 전반기까지만 해도 일부 지역에선 남성화자가 같은 성의 손위 동기를 ‘언니’라 부르기도 했고, 1970~80년대에는 여학생들이 남자 선배를 ‘형’이라 부르는 일이 예사였다. 또 여성화자가 제 손위 동서를 ‘형님’이라 부르는 것은 지금도 표준 규범에 속한다.
"어머나"는 여성어 "어험"은 남성어… 기대되는 성 역할따라 언어도 차별화
남녀 경계 흐려지며 언어도 중화 추세… 남성 "호호" 여성 "하하" 하는 시대 머잖아
한국어의 성적 방언은 몇몇 감탄사에서도 눈에 뜨인다. ‘에구머니!’, ‘어머!’ ‘어머나!’ 같은 말을 입밖에 내는 사람은 거의 예외 없이 여성이다. ‘별꼴이야!’ 같은 표현도 마찬가지다. 남성화자가 이런 표현을 썼다면, 그것은 성 뒤집기를 통해 주위 사람들의 웃음을 이끌어내려는 속셈과 관련 있을 테다. 텔레비전의 개그 프로 같은 데서 말이다.
반면에 ‘예끼!’나 ‘어험!’ 같은 감탄사는 대체로 남성화자들이 사용한다. ‘호호’가 여성의 웃음이라면, ‘허허’는 남성의 웃음이다. (물론 이 두 웃음은 의미의 결이 다르다. 그러나 그 서로 다른 의미의 결은 각각 여성과 남성에 대한 사회적 선입견에 대응한다.) 하게-체의 2인칭 대명사 ‘자네’도 남성화자들만 쓰는 듯하다. (호남지방에는 부부끼리 상대방을 ‘자네’로 부르는 관습이 아직 남아있다고 한다.)
이렇게 비교적 또렷한 예말고 그저 경향을 드러내는 예도 있다. 긍정적 대답인 감탄사 ‘예’는 남성화자들이 즐겨 쓰는 듯하고, 같은 뜻의 감탄사 ‘네’는 여성화자들이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아프니?” “배고프니?”처럼 어미 ‘니’로 끝나는 의문문도 여성들이 주로 사용한다. 남성화자들은 이 경우에 어미 ‘냐’를 쓰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것은 말 그대로 경향일 뿐이어서, “아프냐?”라고 말하는 여자도 적지 않고 “배고프니?”라고 말하는 남자도 수두룩하다. 합쇼-체(아름답습니다, 갑니까?)와 해요-체(아름다워요, 가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해요-체가 비교적 여성적이고 합쇼-체가 비교적 남성적이라는 느낌은 있지만, 여자가 합쇼-체를 못 쓰란 법 없듯 남자가 해요-체를 못 쓰란 법도 없다. 실상 젊은 세대의 경우 일상어에선 남녀 가림 없이 합쇼-체가 거의 힘을 잃고 해요-체가 득세하는 듯하다.
일본어에선 화자의 성에 따른 변이가 한국어에서보다 더 또렷하다. 그런 성적 방언은 거의 전 품사에 걸쳐 있다. 일본어 1인칭 대명사(한국어의 ‘나’)로는 남녀가 함께 쓰는 ‘와타시’(와타쿠시)가 있지만, 편한 자리에서 여성화자는 ‘아타시’나 ‘아타쿠시’를 쓰고 남성화자는 ‘보쿠’나 ‘오레’를 쓴다.
‘먹는다’는 동사도 여성화자는 ‘다베루’를 즐겨 쓰고 남성화자는 ‘구우’를 즐겨 쓴다. 먹어보니 맛이 있을 때, 여성화자는 ‘오이시이’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남성화자는 ‘우마이’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또 남성이 ‘미즈’라고 부르는 물(水)을 여성은 ‘오히야’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고, 남성이 ‘하라’라고 부르는 배(腹)를 여성은 ‘오나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말들에도 화자의 성 차이 못지않게 의미의 결 차이가 스며있음은 물론이다.
여성 일본어화자들의 말버릇 하나는 겸양이나 공손, 친숙의 기분을 담은 접두사 ‘오’(御)나 ‘고’(御)를 남용하는 것이다. 여성들은 ‘벤토오’(도시락), ‘하시’(젓가락), ‘혼’(책)을 ‘오벤토오’ ‘오하시’ ‘고혼’이라고 즐겨 말한다. 이런 상냥하고 공손한 말투는 여성의 소수자 지위와도 관련이 있을 테다.
미화어 ‘오’는 일부 외래어에까지도 덧붙어서 ‘오비이루’(맥주, 비어), ‘오코피이’(복사본, 카피), ‘오토이레’(화장실, 토일릿) 같은 표현을 만들어내고 있다. 여성의 말투가 남성의 말투보다 상대를 더 배려한다는 것은 영어화자들에게서도 관찰되었다. 여성 영어화자들은 부가의문문이나 kind of, sort of, I wonder, I think처럼 전언의 강도를 눅이는 표현을 남성화자들보다 훨씬 더 자주 사용한다.
영국인 사회언어학자 피터 트럿길은 자신의 고향 노리지를 포함한 여러 영어사용 지역을 조사한 끝에 여성화자의 언어가 남성화자의 언어보다 대체로 더 규범지향적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예컨대 문법에 어긋나는 것으로 간주되는 중복부정문(예컨대 I don't smoke marijuana no more 이젠 마리화나 피우지 않아요. 문법에 맞는 표현은 I don't smoke marijuana any more)은 영어 사용자들의 일상 회화에서 흔히 들리지만, 모든 계급에 걸쳐서 이런 식 표현을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덜 사용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표준영어의 동명사화 접미사 -ing를 /in/으로 발음하는 구어 관행도 모든 계급에 걸쳐서 남성보다 여성 사이에 훨씬 덜 퍼져 있었다.
문법에 어긋나는 비표준 언어가 (상류층을 포함한) 남성 일반에 스며 있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트럿길은 또 다른 사회언어학자 윌리엄 레이보브의 ‘은밀한 위세’(covert prestige) 개념을 차용했다. 이런 비표준 언어는 대체로 노동계급의 언어지만, 그 ‘거?’의 이미지가 ‘남성다움’의 위세를 은밀히 드러내 모든 계급의 남성화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친다는 것이다.
반면에 여성 화자들은 남성에 견주어 사회로부터 ‘올바른’ 행동을 할 것이 더 기대되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표준어 규범에 더 쉽게 순응한다는 것이다. 계급을 통틀어서 여성화자보다 남성화자가 욕설을 비롯한 금기어들을 더 자주 사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성적 소수자로서 여성은 남성보다 더 신분을 의식하는 경향이 있어서, 규범언어가 주는 ‘공공연한 위세’(overt prestige)에 더 마음을 쓴다고 할 수 있다.
영어화자들을 대상으로 한 트럿길의 이런 관찰은 한국어 화자들에게도 뜻을 지니는 것 같다. 지방 출신 서울 거주자 가운데 서울말을 능숙하게 쓰는 여성은 같은 조건의 남성보다 훨씬 많다. 다시 말해 여성화자들은 남성화자들에 견주어 더 쉽게 자신의 방언을 버리고 표준어에 동화/순응하는 경향이 있다. 서울에 살아본 적이 없는 지방 사람들도 서울말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경우가 있다. 대개 여성이다. 교육 받은 서울내기도 특정한 맥락에선 부러 방언이나 비속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대개 남성이다.
그래서 표준적 규범 언어가 사용되는 지역과 위세가 약한 방언이 사용되는 지역에선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뒤바뀐다. 표준어가 사용되는 지역에선 여성이 이 규범언어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보수적이다. 반면에 위세가 약한 방언이 사용되는 지역에선 남성이 그 방언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보수적이다.
그러나 한국어를 포함한 많은 자연언어에서, 여성언어와 남성언어는 중화하고 있는 추세다. 전통적 성 역할 분할선이 점차 흐릿해지고, 매스커뮤니케이션이 언어공동체를 촘촘히 묶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언어와 성차별
대부분의 자연언어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의 흔적을 꽤 짙게 간직하고 있다. 어느 자연언어에서고 욕설의 큰 부분은 성행위와 관련된 것인데, 여성을 비하하는 욕설이 남성을 비하하는 욕설보다 수도 훨씬 많고 강도도 세다. 똑같은 말도 남성에 대해서 쓰일 때와 여성에 대해서 쓰일 때 의미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He is a professional”이라는 문장에서 professional(전문직)은 의사나 법률가를 뜻하게 마련이지만, “She is a professional”이란 문장에서는 똑같은 단어가 창녀의 은유로 이해된다.
호명 순서에서도 남성이 거의 언제나 여성을 앞선다. ‘남녀’라는 말 자체가 그렇거니와, 딸 넷에 아들 하나를 둔 부모(‘부모’도 그렇다)도 ‘4녀1남’이라고 말하기보다 ‘1남4녀’라고 얘기한다.
‘아들 딸’ ‘자녀’ ‘신랑 신부’, ‘장인 장모’ ‘소년 소녀’ ‘선남선녀’ 같은 표현들이 다 그렇다. 물론 여성이 앞선 경우도 있긴 하다. ‘총각 처녀’나 ‘아빠 엄마’보다는 ‘처녀 총각’이나 ‘엄마 아빠’가 더 자연스럽게 들린다. 이런 예로 여자와 남자를 낮춰 이르는 ‘연놈’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 경우 여성이 앞선 것은 이 말의 비속함과 관련 있을 것이다. 게다가 ‘년’과 ‘놈’은 대등한 가치를 지닌 욕설이 아니다.
Patrick에서 나온 Patricia, Gerald에서 나온 Geraldine, Paul에서 나온 Paula 등 영어 여성 이름 가운데 적잖은 수가 남성 이름에서 파생됐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명사도 마찬가지다. hero(영웅)에서 heroine이 나오고 actor(배우)에서 actress가 나오고 lion(사자)에서 lioness가 나왔듯 남성형이 기본형인 예는 한도 끝도 없지만, 그 반대의 경우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프랑스어는 3인칭 복수 대명사를 여성 elles과 남성 ils로 구분하지만, 여자와 남자를 함께 지칭할 때나 여성명사와 남성명사를 아울러 가리킬 때는 남성형 ils을 사용한다. 스페인어로 ‘의사’는 ?瀕早汶?嗤?그 여성형 ‘메디카’는 여의사를 가리키기보다 흔히 의사 부인을 가리킨다. 이젠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유관순 누나’라는 표현도 지독히 남성중심주의적이다.
현실은 언어 이전에 있는 것이어서 언어를 바꾸려는 노력이 고스란히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될 수는 없겠지만, 언어의 비틀림을 응시하는 일은 현실의 비틀림을 살피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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