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권이나 2인자는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의 2인자는 누구일까? 한동안은 최근 골프파동으로 낙마한 이해찬 전 총리가 2인자 소리를 들을 만큼 힘을 썼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집권기간을 통틀어 이야기하라면 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을 보필하다가 최근 건강 문제로 사임한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인자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력한 후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문 전 수석이 최근 “부산정권” 발언으로 정치권의 집중포화를 맞고 말았다. 문 전 수석은 부산지역 언론인들과의 간담회에서 “대통령도 부산 출신인데 왜 부산시민들이 부산정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APEC 정상회의와 신항 및 북항 재개발, 인사 등 정부로서는 할 수 있는 만큼 부산에 신경을 쓰고 지원을 했는데 시민들의 귀속감이 전혀 없다”고 넋두리를 한 것이다.
● 두차례 대선의 '전략적 지역주의'
문제의 발언이 말실수인지, 아니면 5ㆍ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영남권 유권자를 끌어안기 위한 계산된 발언이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상황을 고려하면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점이다. 전략적으로도 영남권 유권자를 끌어당기는 효과보다는 호남의 유권자들을 섭섭하게 만들고 밀어내는 부작용이 훨씬 더 큰 발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같은 불만을 토로할 수밖에 없는 문 전 수석의 섭섭함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사실 노무현 정부 출범을 보면서 노 대통령이 호남의 지지에 기반해 당선됐지만 부산 출신이니만큼 시간이 흐르면서 부산의 지지도 얻어내 지역주의 완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런 식으로 전개되지 않았다.
어쨌든 대통령이 부산 출신이므로 노무현 정부는 부산정권 아니냐는 주장은 틀렸다. 문 전 수석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3김 이후 나타나고 있는 대선 후보의 출신지역과 지지지역간의 불일치, 그리고 이 같은 현상을 낳고 있는 원인인 전략적 지역주의라는 새로운 현상이다. 이는 1997년 대선, 2002년 대선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 두 대선에서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의 후보는 이회창 전 총재였다. 이 전 총재는 충청 예산 출신인 바, 이 총재 체제의 두 당을 충청도당이라고 볼 수 있고 이 전 총재가 집권했다면 이를 충청도 정권이라고 볼 수 있을까. 문 전 수석도 그렇지 않고 영남당, 영남정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전 총재가 충청 출신이지만 기본적으로 영남의 지지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논리로 노무현 정부는 노 대통령이 부산 출신이지만 부산의 지지에 기반해 집권하지 않았고 지금도 부산의 지지에 기반해 있지 않기 때문에 부산정권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우리의 지역주의가 한 단계 고도화된 전략적 지역주의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지역주의는 “우리가 남이가” 식으로 자신의 출신지역 정치인을 무조건 지지하는 정서적 지역주의였다.
그러나 1997년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서부터 그것이 아니라 전략적 계산에 의해 출신지역과 상관없이 상대방지역후보를 떨어뜨릴 경쟁력이 가장 강한 후보를 지지하는 전략적 지역주의로 바뀐 것이다. 당시 대구 출신의 이수성 후보는 경선에서 영남후보가 본선에서 이긴다는 영남후보 필승론을 내세웠다.
● 지역주의 오히려 더 악화
그러나 영남의 대의원들은 충청 출신이지만 호남의 김대중 후보를 떨어뜨릴 경쟁력이 이 후보보다 더 있다고 판단한 이회창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2002년 대선도 마찬가지다.
호남은 민주당 경선에서 호남 출신의 한화갑, 정동영 후보보다도 본선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부산 출신의 노무현후보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의 지역주의는 최근 들어 오히려 악질화, 고도화된 측면도 없지 않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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