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에 나온 미국 영화 ‘블랙호크 다운’(Black Hawk Down)은 1993년 내전이 치열하던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가 배경이다. 반군 지도자 아이디드를 잡기 위해 투입된 미 육군 레인저와 델타 포스 등 특수전 부대가 추락한 블랙호크 헬기 조종사를 구출하려다 반군에 포위돼 악전고투하는 상황을 실감나게 그렸다.
이 전투에서 미군은 18명이 죽고 79명이 다쳤으며, 소말리 반군과 민간인 1,000여 명이 사망했다. 영웅적 사투를 벌인 것 같지만, 반군과 시민들이 미군 시체를 끌고 다니며 환호하는 모습이 여론에 충격을 던져 클린턴 정부가 전격 철군을 단행하는 계기가 됐다.
■이런 배경만 보면 미국의 무분별한 대외 개입을 비판한 영화로 오해할 수 있다. 실제로는 대중의 애국심을 고양시켜 부시 행정부의 적극적 대외개입에 대한 지지를 넓히는 데 이바지했다는 평가다.
미군도 출연진이 포트 베닝의 특수전 훈련소에서 단기 집중훈련을 받도록 배려하는 등 적극 지원했다. 배우 브렌든 섹스턴은 당초 시나리오에 소말리아 개입의 타당성을 회의하는 대목이 여럿 있었으나 제작과정에서 사라졌다고 증언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대외개입 세력의 은밀한 의도에 헐리우드의 애국주의 관행이 영합했다는 얘기다.
■뉴욕 타임스는 영화가 소말리 인들을 백인뿐인 미군을 아무 이유없이 죽이기 위해 광분하는 검은 야수처럼 그린 것은 음험한 인종주의라고 비판했다. 내전과 미국이 얽힌 역사를 왜곡, 실패한 개입을 정당화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냉전시대 이디오피아가 소련과 유착하자 인접 소말리아의 독재정권을 지원했다.
아이디드의 반군이 정권을 무너뜨리고 적대 군벌과 내전에 들어간 뒤에는 구세력을 도왔다. 이어 내전과 기근으로 30만 명이 희생되는 참상을 빌미로 이른바 인도주의적 개입을 단행했다. 그러나 기아 구제에는 건성인 채 아이디드 체포에 매달려 소말리 인들의 적개심을 불렀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미국이 노린 아이디드는 96년 반대세력에 의해 살해됐으나 내전과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모가디슈 정부는 이슬람 세력이 이끌고 있지만 반군 군벌이 강성해 민생은 여전히 도탄에 빠져 있다. 이런 마당에 미국이 반군을 몰래 지원해온 사실이 폭로돼 논란이 됐다.
미국은 얼버무렸지만 결국 알 카에다와 연계된 이슬람 강경파 견제를 위해 반군을 지원했다고 변명할 것이다. 그러나 국제언론은 영화 블랙호크 다운이 왜곡한 미국의 위선적 대외개입 행태를 새삼 조명하고 있다. 국제문제를 속속들이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헐리우드 영화를 이해의 바탕으로 삼는 어리석음은 피해야겠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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