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재계가 24일 노무현 대통령과 재계 총수들간의 청와대 회동을 앞두고 추진하고 있는 대ㆍ중ㆍ소 기업 상생협력이 점차 그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대기업의 지원 아래 개발된 중소 기업의 신기술이 해당 기업 뿐 아니라 대기업에게 대박을 안겨주는 일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대ㆍ중ㆍ소 기업 모두가 신나는 승승(勝勝)경제를 위한 상생ㆍ협력의 성공 사례와 문제점을 3회에 걸쳐 진단한다.
“내년에는 두께가 얇은 휴대폰이 대세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휴대폰 부품 중 두께를 줄일 수 있는 것은 사실 ‘힌지’(Hinge) 밖에 없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8월 휴대폰용 힌지 생산업체 쉘라인에 이러한 정보를 귀띔했다. 슬라이드형 휴대폰의 폴더를 살짝 밀었을 때 반자동으로 올라가거나 내려가도록 하는 스프링 장치인 힌지는 얇은 휴대폰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지난해만 해도 힌지의 두께는 평균 3.2㎜나 됐다.
쉘라인은 가능한 한 힌지의 두께를 줄여야 했지만 이를 위해서는 과감한 연구ㆍ개발(R&D)과 막대한 설비투자가 뒤따라야 했다. 삼성전자는 이러한 쉘라인의 애로를 파악, 무이자로 22억원에 달하는 투자액을 빌려줬다. 힌지의 두께를 50%나 감소한 1.6㎜까지 줄이기 위한 쉘라인의 연구가 본격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준 것이다.
사실 삼성전자와 쉘라인의 협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까지 힌지는 대부분 금속 재질이 쓰였다. 한정된 공간에서 하루에도 수백번씩 위아래로 작동해야 하는 힌지는 상당한 내구성과 강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쉘라인은 이를 금속보다 더 강한 플라스틱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내 놓았다. 삼성전자는 쉘라인의 제안을 적극 수용했고 핵심 기술 지원 등을 아끼지 않았다. 2005년 6월 세계 최초로 플라스틱 힌지가 개발됐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먼저 가격이 40%나 떨어졌다. 기존 금속형 힌지 모듈의 평균 납품가는 3,700원에 달했지만 플라스틱으로 대체하자 2,200원으로 떨어졌다.
가장 큰 혜택을 본 것은 삼성전자다. 힌지 구매가가 낮아지며 삼성전자는 연간 540억원에 달하는 원가를 줄이게 됐다. 금속형 힌지보다 무게까지 가벼워지면서 삼성전자 휴대폰의 경쟁력은 더욱 높아졌다. 삼성전자는 쉘라인에 더 많은 물량을 주문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쉘라인과 삼성전자의 이러한 지속적인 상호 협력은 결국 지난해말 세계 최초로 두께가 1.6㎜에 불과한 슬림 플라스틱 힌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쉘라인이 개발한 힌지를 적용한 휴대폰 개발에 착수, 곧바로 ‘슬림 슬라이드폰’을 선보였다. 이 과정에서도 삼성전자와 쉘라인은 끊임없이 머리를 맞댔다. 힌지를 개발했다 하더라도 제품 적용 과정에서 좌우 비틀림이나 소음 등이 발생하면 제품화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완벽을 기한 슬림 슬라이드폰은 출시 3주 만에 하루 실 개통 수 1,500대를 돌파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삼성전자는 현재 쉘라인의 슬림 플라스틱 힌지를 적용한 초슬림폰 40여종을 개발하고 있다. 시장에 신제품이 본격 출시될 경우 삼성전자 휴대폰의 경쟁력은 더욱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이달 초 출시된 ‘스킨폰’은 3주만에 하루 실 개통수가 최고 3,300대를 돌파하며 빅 히트를 예고하고 있다.
쉘라인도 신바람이 나긴 마찬가지다. 2004년 114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액은 지난해 320억원으로 늘어났고 올해는 800억원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2억원의 설비투자와 지속적인 기술 지원이 결국 540억원의 원가 절감으로 돌아왔다”며 “협력업체와의 상생은 가장 확실한 투자라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라고 밝혔다. 쉘라인 관계자도 “상생이 결국 승승(勝勝)을 낳았다”며 “앞으로는 세계 시장 공략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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