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크 올미의 ‘비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최정수 옮김, 휴먼앤북스)는 육체의 사랑이 ‘최초의 진실’임을 새삼 일깨우는 소설이다. 그 진실의 행위, 행위의 진실이 갈등과 상처를 아물게 하는 치유의 제의이고 재활의 축복임을 깨닫게 하는 소설이다.
소설은 이혼한 뒤 5년 만에 재회한 50대 전(前) 부부의 파리의 한 호텔 방에서의 행위와 내면의 묘사로 이어진다. 두 사람이 헤어진 이유는 뚜렷하지 않다. 열렬히 사랑했고 더 없이 행복했으나 남자의 정신이상 증세로, 그로 인한 여자의 고통으로, 여자의 사랑에 대한 부인(否認)으로 끝장난 듯하다.
헤어졌지만, 각자의 삶은 행복하지 않다. 여자는 남자에 대한 죄의식으로 거식증에 시달리며 생의 의지를 잃어가고 있고, 남자는 여자에 대한 미련과 그리움으로 그녀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지냈다. 그들의 만남은 그 끝에 이뤄졌고, 여자는 설명될 수 없는 몸의 충동으로 남자에게 다가선다. “존재와 시간의 질서를 전복시켜버릴” 운명의 키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호텔을 찾는다.
작가는 그 질펀한 상상의 공간과 두 사람의 내면을, 가식의 부끄러움과 거리낌을 초월한 천진함으로, 모든 욕망의 에너지를 소진한 뒤의 나른한 듯 처연한 음조로 그려나간다. “쾌락을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한 기억을 상실한”(56쪽) 남녀의 행위, 잃어버린 “육체가 피부 밑에서 깨어나”고 “생명이 되돌아오”(117쪽)는 순간의 감격…. “(여자는) 그의 육체에서 그녀의 육체로, 그의 성기에서 그녀의 영혼으로 흘러드는 기쁨”(119쪽)으로 자신의 삶을 재구성한다. 그런 그녀를 남자는 바라본다. 그녀를 다시 잃지 않기 위해서, 오직 “그의 기다림과 그녀에 대한 그의 욕망만 볼 수 있도록.”(122쪽)
그들이 함께한 하루의 시간, 그 일시적 포옹은 허망한 것일지 모른다. 호텔 방 열쇠는 반납될 것이고, 그 열쇠는 다시 여행자들에게 파리의 밤을 제공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누린 몸의 진실은 그 너머 ‘부드러운 일상으로 짜인 평범한 한순간’의 공유에 대한 갈망에 닿아 용서와 약속의 시간으로 나아가게 한다.
우리에게 처음 소개되는 이 프랑스 작가는 문학적으로 자칫 위험한 이 서사의 처음과 끝을 섬세하고 절제된 감각과 시적인 문체로 격조 있게 잇는다. 그리고 나직히 이야기한다. 사랑의 구원과 파멸이, 그 희열과 쓸쓸함이 그리 멀지도, 다르지도 않음을.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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