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주(24)씨의 소설집 ‘달로’가 나왔다. 제3회 ‘문학과사회’ 신인 문학상을 탔고, 수상작(표제작)의 낯선 문학적 징후와 그 속에 내포된 도발적인 전언으로 하여 “간단찮은” 또 “간단찮을” 신인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작가의 첫 작품집이다.
그의 활자들은 산책을 즐기듯 책 속을 배회한다. 문장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오래된 꿈처럼 모호하고, 얼마 나아가지 않은 듯한데도 돌아보면 아득히 먼 길을 온 듯 느껴지게 만든다. 그렇게 그의 문장은, 곧장 빠르게 거침없이 경쾌하게 질러가는 달변의 요즈음 소설 문장들 사이에서 사뭇 도드라진다.
“사람들은 소리로, 체취로, 뿌연 영상으로 모든 것을 기억한다. 피부와 피부가 맞닿은, 세포와 세포가 맞닿은, 입을 열고 나온 단어들이 공중에서 얽히는,…그런, 아슬아슬하게 연결된 객차가 이어진 기차와, 기차가 밟고 지나가는 철로가 하나의 줄기에서 서넛이 유연하게 가지를 치고,…그 끝없는 관계를 인식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말 아닌 모든 것을 기억했다.”(‘달로’에서)
책에는 8편의 단편이 나뉘어 실려있지만, 작품들을 나누는 벽은 허술하다. 허술해서, 연작 장편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 까닭은 우선, 작품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욕심내지 않기 때문이고, 그 이야기 바깥의 문장들이 배회하며 다른 작품 속 문장들과 자주 겹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오래전에 모두 매진되었다.… 슬픔은 날이 갈수록 아름답고 정교하게 포장되었고, 도시의 스펙터클은 날이 갈수록 거대해지고 장엄해졌으나, 사람들은 무엇에도 감동하지 않았고, 기대와 전율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죽음의 푸가’)
“이야기는 모두 증발했습니다. …증발, 증발, 증발은 흔적도 남기지 않습니다. 흔적이 없으므로 그리움도 없습니다.”(‘세이렌99’)
“우리의 세대는 수사학이 선인 세대다.…우리에게 언어는 다만 치장일 뿐이다. 치장된 언어는 윤리적으로 거짓말보다 더 나쁘다”(‘그리고 음악’)
이야기의 종언과 감동의 종말을 확언하고, 레토릭의 공허함과 부도덕함을 비트는 것은 그들이 인지한 세상과 문명의 실체 때문이다.
“드높은 건물들이 일제히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 건물들이 뿌리를 뻗어내린 길은 꿈의 공장이라고 불려졌다. 세계는 같은 시각에, 같은 내용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아련. 한 추억들은 활짝 젖혀진 어느 공장에서 조금씩 가공되었다.”(‘달로’)
“화면 속의 그들은 하나의 슬픈, 꿈이었다. 그런 꿈들을 위해 사회가 금고를 열면, 산업은 금고를 덜어냈고, 사람들이 다시 금고를 채워넣었다.…날이 갈수록 백일몽은 현대에 걸맞은 규모로 부풀어올랐다. 사람들이 그것을 진화라고 불렀다.”(‘죽음의 푸가’)
“내 기억들은 언제나 전파를 타고 왔으므로. 세계는 14인치 텔레비전 화면 하나로 축소되어 있었다.”(‘그리고 음악’)
동구의 붕괴도, 9ㆍ11 사태도 디지털 영상으로 순식간에 전달되는 공시적 문명세계. 그 속에서 “고통을 느끼기 위한 순간의 여유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리고 “오직 전파만이 영혼의 속도로 직진하”는 이 시대의 야만!
이야기가 사라진 세계에서 이야기 해야만 하는 작가의 고통이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전언이라고 한다면, 또 그 영혼의 전언을 오롯이 담지 못하는 언어의 한계가 한없이 배회하는 문장의 이유라고 한다면 어떨까.
작가는 우리의 시선이 끝내 닿지 못할, 그래서 더욱 아름다울 달의 이면을 응시하고 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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