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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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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

입력
2006.05.19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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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 행복은 또 무엇인가.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태어나서 가끔은 기쁘게 살다가 늙고 병들어 죽는 삶의 진리가 바뀔 수 없다면, 삶의 근본에 대한 이 같은 질문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비슷한 고민을 선인들은 우리보다 앞서 했을 것이다.

고전에는 그 같은 고민에 대한 나름의 답이 있다. 급변하는 현대 시대에 100% 맞아 떨어지진 않는다 해도, 삶의 근본에 대한 변치 않는 생각이 들어있다.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는, 삶과 문명에 질문하고 답하는 서양 고전 68종을 21세기 한국적 시각으로 다시 읽는 서평이다. 고전에 대한 소개서이자 당대의 삶의 모습이며 작가의 전기이기도 하다.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각의 고전을 읽고 책에 담긴 고민을 내면화한 뒤 다시 이 시대의 한국인에게 질문으로 던지고 있다.

책은 4권으로 구성돼 있는데 1권은 인문ㆍ자연 편이다. 강순전 명지대 교수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소개하며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 주목한다. 인간은 타인을 인정하기보다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며, 자기의식을 갖는 인간으로 대우받느냐 아니냐를 놓고 목숨 건 투쟁을 한다는 것이다.

김호동 서울대 교수는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단순 여행기가 아니라 체계적인 지리서로 평가한다. 서양인이 동양을 방문한 뒤 기록한 여행기가 아니라 동양과 시베리아 아프리카 러시아 등 서구를 제외한 나머지 세계 전역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동, 서양의 이분법적 구별이 없다고 강조한다.

성균관대에 와 있는 일본인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도 비슷하다. 히로시 교수는 유럽이 유라시아의 서쪽 반도에 불과한데도 굳이 대륙으로 취급받으려 하는 것은, 동양에서 스스로를 분리시킴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오리엔탈리즘’은 그 같은 의도를 날카롭게 들춰내고 있다고 평가한다.

정치ㆍ사회 분야의 고전을 모은 2권에서 출판인 최광렬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영혼의 성장에 관한 보고서’로 규정한다. 소로가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마을의 월든 호수에 들어간 것은 1845년 7월4일이었다. 당시 소로는 물질주의에 찌든 삶은 인생의 본질을 외면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자면 물질과 육신의 안락에 대한 집착을 끊어야 했기 때문에 소로는 스스로 자발적인 빈곤과 간소화의 길을 걷는다.

도시를 뒤로 한 채 월든 호수에 들어간 그는 명상하고 농사 짓고 동서양의 고전을 읽었다. 그런 소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고 그가 책을 냈을 때도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그리고 제국주의와 전쟁과 혁명이 한바탕 휩쓸고 다시 빛의 속도로 경쟁이 벌어지는 최근에 이르러서야 책은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정정훈 연구원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사람의 사회적 관계에 주목한 저작이라고 평가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최대 목적, 즉 가치의 증식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 속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하고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해야만 가치를 증식하고, 상품은 넘쳐나도 그것을 생산한 노동자는 소외될 수 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모습을 드러내 보였다는 것이다.

3, 4권은 문학 작품을 모았다. 김주연 숙명여대 교수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헤브라이즘, 헬레니즘, 게르만 신비주의를 통합하려는 노력의 산물로 평가했다. 괴테가 살던 18세기말, 19세기초는 문학사적으로는 질풍노도기, 고전주의, 낭만주의를 거치는 정열의 시기였고 정치사적으로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헤겔과 마르크스가 등장하는 격동의 시대였다.

본질적으로는 기독교의 전통과 게르만 신비주의가 갈등을 일으키던 때였지만, 괴테 시대에는 팽팽한 긴장 속에서도 서로를 인정하고 병존을 모색하려 했는데, ‘파우스트’는 그 대표작이었다. 김 교수는 눈을 우리나라로 돌려 샤머니즘이라는 전통적 신비주의와 유교와 불교, 그리고 기독교 정신이 보다 높은 단계의 문화로 승화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병훈 경북대 연구교수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하나의 산문 장르로는 포괄할 수 없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내용과 형식을 지니고 있어 역사대하소설의 전형이라고 평가했으며, 문학평론가인 우찬제 서강대 교수는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미국 경제 공황기의 우울한 초상을 형상화한 작품, 대공황기의 서사시로 보았다.

진부해 보이기 쉬운 형식이지만, 오히려 간결한 핵심 짚기를 통해 독자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편찬위원회는 비록 서양 고전이지만 21세기를 사는 한국인에게 새로운 문제의식으로 다가설 수 있는 내용을 찾아내려 했다고 한다. 서양 고전이지만 우리의 시각으로 읽자는 것이다. 출판사는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동양의 고전을 읽는다’ 시리즈를 추가로 발간할 계획이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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