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경기 파주시 교하면 신촌리의 한 공장. 압출기가 쉬지 않고 비닐 봉투 원단을 토해냈다.
누가 봐도 뇌성마비가 분명한 장애인들이 작업장을 오가며 기계들을 돌봤다. 알아들을 듯 말 듯한 말과 어색해 보이는 몸짓이었지만 30㎏의 비닐 원단을 다음 작업장으로 옮기는 손발은 기계와 척척 맞았다.
이 공장은 사고로 장애인이 된 정덕환(60) 이사장이 1983년 장애인들을 모아 설립한 직업 재활 시설 ‘에덴하우스’다. 직원 100여명 중 90명은 지체, 정신지체, 청각장애 등 중증 장애인이다.
대규모 부지에 최신 시설을 갖춘 에덴하우스에서는 하루 40만~50만 장의 2~100ℓ짜리 쓰레기 봉투들을 제작, 수도권 20여 지방자치단체에 공급한다. 지난해 매출액은 43억원, 올해 목표는 60억원이다.
압출 작업장 옆 인쇄 작업장에선 고속으로 기계를 통과하는 비닐 원단에 문구가 인쇄돼 나왔다. 잉크의 양은 적절한지, 정확한 위치에 인쇄되는지 등을 확인하는 비장애인 엔지니어들과 보조 업무를 맡은 장애인들이 바삐 움직였다. 비장애인인 인쇄기 엔지니어 권성택(40) 씨는 “이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만큼은 이들은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니다”며 동료 직원들을 치켜세웠다.
양병렬(39ㆍ지체장애 2급) 씨는 성실성 덕분에 지난해엔 에덴하우스 식당의 비장애인 영양사와 결혼했다. “장애인이고 싶은 사람 없고, 장애를 가졌다 해도 일하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어요. 능력은 있지만 일을 못하고 있는 장애인들이 안타깝습니다.”
인쇄된 비닐 원단을 포장하는 작업장. 50여 명의 장애인들이 글씨가 인쇄된 비닐 원단을 잘라 크기별로 10장씩 묶고 있었다. 다른 작업장과 달리 서로 마주보고 일을 하는 탓인지 여기저기서 들리는 웃음소리가 정겹다.
포장 작업 책임자인 김호식(49ㆍ지체장애 1급) 반장은 “장애인들도 이렇게 일자리만 주면 누구에게 신세지지 않고 가족까지 부양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며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김 반장은 결혼해서 아들 둘을 두고 있다. 그는 “자폐인 직원들도 있는데 이들은 봉투를 세는 능력이 보통사람보다 10배는 빠르고 정확하다”며 직원 자랑을 쏟아냈다.
장애인 직원들의 급여는 평균 87만원. 적다면 적은 돈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정당한 땀의 대가를 받으며 느끼는, 어엿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자부심이다. 가만히 있어도 국가에서 주는 수십만 원의 지원금을 받겠지만 이들은 지원금 대신 일을 택했다. 홍선규 사무국장은 “월급으로 노부모를 부양하는 직원도 있다”며 “이 곳은 장애와 장애가 모여 희망을 생산하고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장애인 직업재활 시설로는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히는 에덴하우스는 19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장애인 직업재활을 위한 국제단체 WI(Workability International) 한국지부와 공동으로 중증 장애인의 직업 재활을 주제로 한 포럼을 개최한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 "장애인, 일 있으면 사회에 짐 안돼"
에덴하우스를 운영하는 에덴복지재단의 정덕환(사진) 이사장은 한때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했던 유망한 유도 선수였다.
1972년 8월 훈련 중 사고로 목뼈 골절을 입으면서 그는 휠체어에 앉았다. 전신마비장애 1급. 인생의 전부였던 유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지도자의 길을 걷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그를 코치로 받아 주는 곳은 없었다. 모교인 연세대도 마찬가지였다. “휠체어로 학교를 나오는데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그때서야 다른 장애인들도 겪었을 고통을 나눠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80년 서울 구로동에서 구멍가게를 시작했고 3년 동안 번 500만원으로 가게 근처에 전자부품을 가공하는 에덴하우스를 세워 중증 장애인들을 불러 모았다. 쉽지 않았다. 일감을 구하지 못해 굶는 날도 많았다. “장애인들에게 일감을 준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사정이 여의치 않자 정 이사장은 사업 영역을 비닐 쇼핑백으로 바꿨다. “보다 많은 장애인들을 고용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수요가 있고 더 많은 공정으로 나뉘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운도 따랐다. 89년에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된 것. 이때부터 종량제 봉투 전문 생산 업체로 자리잡았다.
정 이사장은 19일 열리는 포럼을 계기로 더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 직업재활 시설에 관심을 가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일할 수 있는 여건만 갖춰지면 장애인도 사회에서 충분히 자신의 몫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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