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 또는 정신증(psychosis)이라고 불리는 마음의 병이 있습니다. 현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는 능력이 상실되면서 사회적인 기능이 크게 손상되는 정신질환으로 정신분열병과 일부 조울병, 우울증 등이 이에 속합니다. 이들 세 가지 질환은 모두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표한 10대 장해 원인에 들어가 있을 정도로 전반적인 보건문제에 심각한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정신증의 진단과 치료를 위해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정신증의 조기발견과 조기치료에 특별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정신증을 일찍 발견하고 일찍 치료할수록 회복이 빠르고 사회생활에 손상이 덜 온다는 것이 밝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뚜렷한 정신증 증상이 나타나면서 정신과를 찾기까지 보통 1~2년 또는 그 이상이 걸린다고 합니다. 돌이켜보면 벌써 그 때서부터 증상이 시작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뚜렷한 증상이 드러나기 이전의 정신증 상태를 초기정신병(early psychosis)이라고 합니다.
정신증의 조기 발견 및 치료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초기정신병 상태를 잘 구분하여 경과를 관찰하다가 적절한 시기에 치료적인 개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증상이 상당히 모호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닙니다. 스스로 또는 가족들의 입장에서 뭔가 달라졌다는 것만으로 정신증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비교적 전형적이었다고 생각되는 초기정신병의 사례를 들어 실마리를 찾아보겠습니다.
제 진료실을 찾았던 N군의 경우, 수개월 전부터 잠이 오지 않고 막연한 불안감이 시작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전에 비해 쉽게 짜증이 나고, 머리에는 구름이 낀 것 같았으며,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른 가족들이 자신에 대해 뭔가 좋지 않은 일을 꾸미는 것 같은 피해의식도 생겼습니다. 어머니가 정신분열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N군은 자신도 같은 병에 걸린 것이 아닐까 의심되어 스스로 병원을 찾은 것입니다.
면담 결과 N군은 상당히 기이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심리검사에서는 모호한 그림에 대해 관습적인 인식을 하지 못하는 지각의 왜곡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초기정신병 상태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소량의 항정신병약물을 투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증상은 비교적 빠르게 호전되어 갔습니다.
O군의 경우는 조금 달랐습니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전과 달리 다른 사람의 시선이 뚜렷하게 인식되면서 심하게 긴장을 하게 되었고 어쩐지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주목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어 당황했습니다. 평소 생활이 많이 위축되었으며 학교와 학원에서는 공부에 집중하지 못해 O군의 학업성적은 크게 떨어졌습니다. O군은 평소 유별난 언행으로 인해 ‘괴짜’라는 별명으로 불려왔습니다. 면담과 심리검사에서도 O군의 생각에 다분히 비논리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이 보였습니다.
O군의 경우에도 초기정신병의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됐습니다. 그러나 O군과 부모는 정신증의 가능성에 대해 납득하지 못했고 정기적인 병원 방문 권유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O군은 결국 심한 피해망상과 환청까지 생기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병원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N군이나 O군과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고 해서 모두 심한 정신증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처럼 초기정신병의 위험요소로서 자주 거론되는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경우, 약물 치료는 하지 않더라도 정신과 전문의의 진찰을 받고 필요한 심리검사를 시행하며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하여 상담하고 경과를 관찰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정신증의 조기검진입니다. 정신증의 조기검진은 일반검진처럼 방사선촬영이나 혈액검사를 통해 간단히 진단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적절한 선별검사도 아직은 확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과 가족들의 인식입니다. ‘뭔가 이상이 생겼다’ 싶을 때 그것을 알아차리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려는 적극적인 마음가짐이기도 합니다.
성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 윤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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