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유? 관심 없어유. 아, 그 사람이 그 사람인데 뭐….”
16일 충남 최대도시 천안역 앞에서 잡아탄 택시 안에서 선거 얘기를 꺼내자 기사 이영호(54)씨는 한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는 “그전 같으면 모여서 커피 한잔 하면서‘누가 낫다’고 말들 하는데 요즘엔 안 그렇다”고도 했다. 먹고 살기 빠듯해서란다. 후보등록 첫날, 충남의 선거 분위기는 이랬다.
이곳 사람들에게서 선거 얘기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마음속으로야 있지만 그걸 어찌 말하느냐”는 답이 부지기수였다. 부동층이 50% 안팎에 달하는 사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다. 선거 무관심과 충청인 특유의 포커 페이스가 섞인 현상이기도 했다.
그래도 붙잡고 늘어지니 속마음이 조금씩은 드러났다. 천안역 광장에서 만난 윤용재(66)씨는 “저기 역전 뒤쪽 포장마차 한번 가봐라. 이 정부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난리다”고 했다. 그는 “바닥부터 진저리를 낸다. 한나라당으로 다 돌았다”고도 했다. 다가동에 산다는 최호식(42)씨도 “여당이 서민을 위해 한 게 뭐 있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나라당 이완구 후보가 열린우리당 오영교, 국민중심당 이명수 후보를 10%포인트 이상 따돌리고 있는 상황이 담겨 있었다.
후보들의 선거 사무실이 몰려 있는 천안 중심가에서 만난 젊은층에서는 여당 지지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신부동 백화점 직원 이종원(32)씨는 “독재했고, IMF 불러온 한나라당은 싫다”며 “우리당이 잘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한나라당보다 낫다”고 했다. 옆에 있던 친구도 “우리당이 하는 일이 옳은 게 많다”고 거들었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는 한나라당의 우세를 점치는 목소리보다 적은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충남의 두 번째 도시 아산도 비슷했다. 천안과 아산의 유권자수는 충남 전체의 50%를 점하고 있다. 아산은 이명수 후보의 고향이다. 하지만 국민중심당 바람은 아직 미미해 보였다. 아산 온양중앙시장 옷가게 주인 장세동(54)씨는 “이명수씨 인기 좀 있었는데 당을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별로다”고 말했다. 자전거 가게 주인 전모(62)씨도 “아직 국중당 바람이 불 정도가 아니다”며 “여기에서도 이완구씨가 좀 나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당은 신통치 않다”는 말은 여전했다.
국중당 심대평 대표의 고향인 공주에서도 ‘바람’은 찾기 어려웠다. 공주터미널 슈퍼 주인 곽철호(51)씨는 “심 지사 때 도청을 공주가 아닌 홍성으로 옮긴 걸 두고 말이 많다”고 했다. 서운하다는 뜻이다. 물론 “누가 충청도 발전을 더 잘할지 두고 보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진짜 바람이 불지는 더 지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와 우리당이 내세운 고속철 공주역 신설 얘기를 꺼냈더니 “크게 영향이 있을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각 후보진영의 전략도 이런 민심의 흐름에 맞춰져 있었다. 오영교 후보측은 “인지도가 낮은 게 문제”라며 “선거전이 진행되면서 인지도와 지지도 상승이 동시에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정청래 홍보위원장은 “인물론을 부각시키면 역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완구 후보측은 “반여 정서가 워낙 강해 특별한 변수가 없으면 승리”라고 했다. 박상배 공보위원장은 “충남이 정권교체의 중심축이 되자는 이슈도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명수 후보측은 막판 충청 바람을 기대하고 있다. 김대순 공보실장은 “출발이 늦어 아직 잘 뜨고 있지 않지만 당이 총력으로 훑고 다니면 충청권 대변 정당에 대한 기대가 생겨 부동층을 잡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민주노동당 이용길 후보는 “양극화를 해소하고 노동자 농민 서민이 차별받지 않는 복지 충남을 만들겠다”며 표밭을 갈고 있다.
천안ㆍ아산ㆍ공주=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 후보들 '행정도시' 놓고 설전
충남 지사 후보들은 무엇보다 행정중심복합도시를 두고 격렬하게 다투고 있었다. 서로 자신이 후속 추진에 적임자라며 상대방 비난도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 만큼 표심에 영향이 있다고 판단해서이겠지만, 막상 지역 주민들은 별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이미 다 차려진 밥상 아니냐”는 인식인 것이다.
열린우리당 오영교 후보는 “행정도시 위헌소송을 주도했던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예산심의를 해주겠느냐”면서 “한나라당은 아직도 국회에 폐지 법률안을 내놓고 있다”고 공격했다. 그는 “행정도시에 제2 대통령 집무실을 만드는 등 사실상의 수도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완구 후보도 만만치 않다. 그는 “2003년 국회의원 시절 행정도시특별법 제정 때 의원직을 걸고 투쟁했다”며 “나만큼 행정도시에 대해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오히려 “원칙과 법대로 추진하면 될 본질적인 문제를 갖고, 여당이 자꾸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국민중심당 이명수 후보 역시 “서울에서는 행정도시 폐지를, 충청도에서는 찬성을 하는 한나라당의 이중적 태도를 지역주민이 심판할 것”이라며 “여당은 선거 때만 되면 행정도시를 들고 나와 선거에 악용하고 있다”고 두 당을 싸잡아 비판했다. 이 후보는 “선거 후에도 변치 않고 추진할 당은 국민중심당 밖에 없다”며 행정전문가인 자신이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정녹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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