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차례의 A매치에서 터뜨린 15골. 스트라이커로서 많은 골은 아니지만 대표팀에서 안정환(30ㆍ뒤스부르크)만큼 ‘킬러 능력’을 가진 선수는 없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팀이 가장 필요로 하는 골을 터뜨리는 게 안정환의 트레이드 마크다. 2002년 한일월드컵 조별리그 미국전 동점 헤딩골, 이탈리아와의 16강전 골든골이 그랬다.
이탈리아 세리에A(페루자)에서 시작해 일본 J리그(시미즈 S 펄스, 요코하마 마리노스), 프랑스 르 샹피오나(FC 메스), 독일 분데스리가(뒤스부르크)까지. 대표팀에서 안정환 만큼 풍부한 해외리그 경험을 가진 선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기록과 경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과 2006년 독일월드컵 대표팀이 구성될 때마다 안정환은 ‘엔트리 탈락설’의 중심에 서야 했다. “열심히 뛰지 않으며 근성 있는 플레이를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K리그를 포함해 무려 5개 리그를 거칠 정도로 굴곡이 많은 선수생활을 했던 안정환은 독일월드컵을 앞두고도 자존심을 구겼다. 뒤스부르크에서 출전기회를 잡지 못한 것이 약점으로 지적돼 엔트리 포함 여부가 불투명했고, 3월 유럽파 점검에 나섰던 아드보카트 감독으로부터 “실망스럽다”는 평가까지 받아야 했다.
그러나 한 번 잡은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고, 큰 경기에서 유독 강한 모습을 보였던 안정환의 천부적인 골 감각은 스스로를 ‘구원’했다. 최종 엔트리 발표 직전 분데스리가 브레멘전(4일), 빌레펠트전(6일)에서 잇따라 골을 터뜨린 것. 16일 첫 연습경기에서 첫 골을 신고, 주변의 우려를 떨쳐내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었던 영웅 안정환은 이제 이동국이 빠진 대표팀의 유력한 ‘원톱’으로 주목 받고 있다. 월드컵의 무대인 독일 그라운드를 누빈 값진 경험을 갖고 있는 안정환은 이번 대회가 한국 선수의 역대 월드컵 본선 최다골 기록을 경신할 기회다. 안정환은 2골을 기록한 황선홍 홍명보 유상철 등 대표팀에서 은퇴한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1골만 추가한다면 월드컵 사상 ‘한국 최고의 골잡이’로 이름을 올릴 수 있다.
빼어난 활약을 펼치고도 오히려 그 활약이 발목을 잡았던 월드컵과의 악연도 이번엔 털어버려야 한다. 2002년에는 소유권을 주장한 페루자의 딴지 때문에 타 리그로의 이적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걸림돌도 사라졌다. 뒤스부르크를 떠나 빅리그 진출을 노리고 있는 안정환으로선 이번 월드컵에서의 활약이 새 둥지를 결정할 전망.
“아니(안정환)는 한일월드컵때처럼 이번 대회에서도 놀라움을 선사할 것”이라는 히딩크 감독의 예상처럼 이번엔 어떤 나라가 안정환의 골 퍼레이드에 희생될지 주목된다.
한준규 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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