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당국자들이 연일 초강력 구두경고를 쏟아내면서 부동산 거품 붕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집값 안정은 소망스런 목표이지만 정부가 붕괴란 충격적인 표현을 거침없이 쏟아냄에 따라 경계론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특히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의 경고대로 집값이 빠른 속도로 폭락할 경우 한국 경제가 일대 쇼크에 빠질 것이 뻔한데도 후유증에 대한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붕괴부터 유도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며 정부의 행태에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다.
연일 파상 공세
재정경제부 김석동 차관보와 김용민 재경부 세제실장은 17일 라디오 방송에 잇따라 출연해 하반기 부동산 가격 하락을 언급하고 나섰다.
김 차관보는 “3.30대책 관련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전체 부동산시장도 안정되기 시작했다”며 “부동산시장이 버블의 저변에 와 있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민 세제실장은 좀더 구체적으로 “부동산 가격은 지금보다 20∼30% 가량 내려갈 것”이라며 “하지만 버블이 붕괴돼도 대책을 내놓지는 않을 것인 만큼 수요자들이 잘 판단하지 않으면 불의의 피해를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도 16일 “일부 지역에서 부동산 버블붕괴가 시작됐다”고 밝혔고 청와대도 앞서 15일 홈페이지를 통해 “서울 강남 등 ‘버블 세븐’ 지역의 집값이 하반기부터 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한 배경이 있나
정부가 부동산 거품 붕괴론을 거론하는 것은 최근 부동산값이 가격상승 기대감에 거는 심리 때문인 것으로 판단해 시장의 심리를 꺾어 놓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정부가 8ㆍ31과 3ㆍ30 대책 등 고강도 규제를 쏟아내고도 특정 지역의 집값을 잡지 못했던 점도 서둘러 집값 하락을 유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정부가 서울 강남 등 이른 바 ‘버블 세븐’ 지역의 거품을 붕괴시키기 위해 보유세 과표인 공시가격을 시세의 100% 수준으로 맞추겠다는 초강수 대책을 예고한 것도 고가 및 이상급등 주택에 대한 부담을 키워 매물을 유도, 단기간에 집값을 떨어뜨리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정부가 5ㆍ31 지방선거를 앞둔 미묘한 시점에 유난한 언행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딴 뜻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 유턴프로젝트와 뉴타운 등 호재에 힘입어 집값이 올해 가장 많이 오른 서울 용산과 영등포, 성동은 물론 정부의 균형개발정책 덕에 땅값이 급등한 충청권 등이 ‘표적’에서 빠진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문제는 없나
전문가들은 서둘러 집값을 잡기 위해 인위적인 경착륙을 유도한다면 불안한 환율과 고유가 등과 함께 자칫 한국 경제에 ‘삼중고’(三重苦)의 악재로 작용할 우려도 있다. 특히 부동산 자산 가치가 높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부동산 거품이 갑작스레 붕괴될 경우 200조원대에 달하는 주택담보대출 부실화 문제로 심각한 금융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는 문제점도 제기될 수 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특정 지역 집값에 거품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지하고, 또 거품이 빠져야 한다는 데는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며 “다만 갑작스런 폭락과 같은 거품 붕괴는 오히려 국가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사장은 “가진만큼 낸다는 조세의 순수 취지가 아니라 징벌의 수단으로 세금 정책을 뜯어고칠 경우 오히려 조세 저항만 초래할 수 있다”며 “또 강남과 분당 등 소위 ‘버블 세븐’으로 지목된 곳에 대해서만 공시가격을 시세의 100%로 맞출 경우 타 지역과의 형평성 시비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집값 거품 붕괴를 성급히 유도하기보다,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단계적인 금리 인상을 고려하는 등 집값이 서서히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연착륙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전태훤 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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