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중 누가 가장 마음이 아프겠어요?”
17일 낮 광주 국립 5ㆍ18민주묘지 내 행방불명자 묘역. 1980년 당시 8세의 어린 나이에 실종됐던 아들의 묘비를 어루만지던 이귀남(70)씨는 기자에게 노기가 잔뜩 묻어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유족들의 아픔에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네요”라는 답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화살이 돌아왔다. 그는 “그것도 모르면서 취재하러 왔느냐”며 화를 버럭 내기까지 했다.
그의 불만이 이어졌다. “아들의 주검을 찾지 못해 남들은 다 있는 봉분도 세우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을 알기나 하세요.” 하지만 이것도 잠시 그는 이내 넋두리를 토해냈다. “봉분이 없어 행불자 묘역은 묘지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 있고, 정부 당국과 언론도 눈길 한번 안 줘요. 그러니 5ㆍ18이 완전히 해결된 것처럼 비춰질 수밖에. 5월이 잊혀지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는 안 되는데….”
주름진 눈가에 이슬이 맺히자 그는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그의 눈물은 ‘잊혀진 5ㆍ18’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비쳐졌다.
5ㆍ18 26주년을 맞는 올해 광주는 예년과 분위기가 딴판이다. 세월의 흐름만큼 그 날의 기억과 정신들이 희미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5ㆍ18 묘지에는 5ㆍ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참배 행렬이 이어지면서 추모 열기보다는 ‘지방선거 열기’가 압도하고 있다. 보다 못한 일부 유족들은 “5ㆍ18묘지에서 표를 구걸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
매년 금남로에서 열리던 전야제의 열기도 예전 같지 않다. 시민들의 관심이 시들해지면서 추모공연 중심이던 행사가 올해는 시민군 체험 행사로 바뀌었다. 5월의 기억을 되살려 내기 위한 몸부림으로 해석됐다.
“5ㆍ18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민군 체험에 나선 한 시민의 외침 속에 2006년 5월 광주는 또 하나의 생채기를 안고 있었다.
사회부 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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