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가는 부자 없다는 말이 있다. 3대 가는 가난 없다는 말과 묶여 세상의 변화를 가리키지만, 물려받은 재산을 유지하는 수성(守成)이 그만큼 어려움을 일깨우는 말이기도 하다. 세계적 대기업에서 유행하는 ‘위기의식의 일상화’와도 통한다.
1대는 고생스럽게 돈을 모아 땅을 사들이고, 2대는 저택을 짓고, 3대는 몰락해 저택을 팔게 되지만 대문에 ‘팔 집’이라는 글씨만큼은 멋들어지게 써 붙인다는 말도 있다. 집안이 기우는 것도 모르고 멋과 풍류에 탐닉했음을 꼬집는 말이다.
● 자본과 부채 애써 혼동
그런데 3대 가는 부자 없다는 말은 현대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을 정확히 집어낸 것이다. 50%의 상속세가 부과된다면 단순 계산으로는 3대째가 되면 재산이 할아버지 때의 25%로 줄어든다.
이런 조세제도가 옳은지, 그른지의 원론적 논란은 참으로 무의미하다. 능력에 따른 부의 축적을 정당화하고, 재산권의 불가침성을 인정하는 데서 자본주의사회가 출발했다는 주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능력과 노력이 재산권의 원천이라면 부의 형성에 기여할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2세가 당사자와 같이 100%의 권리를 가질 수는 없다. 무엇보다 상속세라는 제도는 구미 선진국의 자본주의 발달과정에서 역사적 타협의 산물로 정착돼 온 것이란 점에서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적 실재이다.
전경련이 최근 단순히 상속세 세율이 높다는 주장을 넘어 상속세 자체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듯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경제적 이해가 밀접한 일부 언론까지 편승한 이번 논란의 배경은 이해가 간다. 삼성과 현대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편법 ‘절세’가 사회적 논란을 부르고, 한국사회에 잠재하던 반(反)기업 정서가 되살아나고 있다.
그것이 걸핏하면 양극화를 떠드는 권력의 포퓰리즘 성향과 맞물릴 가능성도 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기업의 의욕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계몽’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무리한 주장은 오히려 재계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키울 뿐이다. 상속제 폐지ㆍ완화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선진국의 사례를 왜곡하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참기 힘든 것은 재계의 인식수준이다. 많은 기업인들은 열심히 일해서 기업을 키워봐야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수 없다는 점을 의욕 위축의 주된 근거로 들었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상속세 총액이 커져서 결국 주식으로 대납할 수밖에 없고, 그 경우 경영권 유지에 필요한 지분을 확보할 수 없다는 얘기다. 기업의 경영권은 창업자 일가가 가져야 한다고 전제하고 있다.
그럴 수 있는 기업은 그래도 된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기업이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 즉 창업자 일가의 지분이 경영권을 확보하기에 부족한 기업이라면 이미 창업자 일가가 주인이 아니다. 사업을 확장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이자를 지불하는 부채 대신 주식 공모로 충당할 때는 이미 기업에 대한 권리를 이자 비용과 맞바꾼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본과 부채를 짐짓 착각해서, 국민을 혼동시키지는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신세계와 삼성이 거액의 상속세 납부 의사를 밝히고 나서 재계의 주장을 무색하게 했다.
정부도 재계의 주장을 모두 묵살해서는 안 된다. 유사 이래 모든 사회제도는 재산 상속과 성(性)의 분배를 축으로 이뤄졌다는 말이 있다. 가족제도에서 보듯 둘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동전의 양면이다. 그만큼 최대한 많은 것을 후손에게 물려주려는 상속 욕구는 강해서, 사회적 본능이라고 할 정도다. 따라서 이를 제약하려면 나름대로의 분명한 원칙과 다른 사회적 이익과의 조화를 고려해야 한다.
● 탄력적 운용 방안 필요
그것이 비록 잘못된 인식이라도 기업인들이 상속세 때문에 의욕이 꺾이는 것이 현실이라면 상속세율을 조정하거나, 극단적으로 임시 면제 조치를 하는 것은 조세정책 상의 문제일 뿐이다. 외국 투기 자본의 공격에 대한 최소한의 방패를 마련하는 등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경영권이라면 얼마든지 보호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상속세로 대납한 주식을 시장에서 매각할 때 특정 세력에 대한 배제 조건을 달거나, 의결권 차등을 인정하는 등의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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