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68) 서울대 명예교수가 최장집(63) 고려대 교수를 실명 비판했다. 반갑고도 고마운 일이다. 혈기가 넘칠 때엔 실명 비판을 하다가도 나이가 들수록 실명 비판에서 멀어지는 학계 풍토에 비추어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두 분의 나이를 표기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두 분 다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진보적 지식인이다. 단순화해 말하자면, 최 교수는 진보적 관점에서 참여정부를 비판했고, 백 교수는 최 교수가 “분단체제와 그 상위체제인 세계체제에 물어야 할 책임마저 집권 세력에 돌리고 있다”며 이는 “‘민주화세력의 집권으로 망가진 대한민국’이라는 보수세력의 결론과도 맞닿는다”고 비판했다.
백 교수는 최 교수에 대해 “원론 차원에서는 좋은 말을 하지만,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는 (학자로서) 무책임한 것이다”고도 했다.
● 원로급 교수 실명 비판 반가워
최 교수의 모든 주장을 참여정부가 다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백 교수의 주장대로 분단체제와 세계체제가 강요하는 구조적 한계 때문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간 최 교수의 참여정부 비판은 분단체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게 더 많았을 뿐만 아니라 참여정부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건드려 왔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2년 전 최 교수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다뤄져야 할 실제 문제(real issue)는 절대다수의 노동인구가 직면한 사회경제적 삶의 조건이 매우 크게 위협받고 있는 현실”이라고 했다. 지금 참여정부가 선거 이슈로 들고나온 양극화 문제를 이미 2년 전에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2년 전 경제낙관론을 역설하면서 민생 문제와는 관련 없는 ‘정치’에만 집착했다.
참여정부가 최 교수의 고언을 경청했더라면 지금처럼 낮은 지지율에 시달리진 않았을 것이다. 참여정부의 낮은 지지율이 분단체제 때문인가? 그렇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 교수의 참여정부 비판이야말로 ‘보약’과 같은 게 아니었을까?
백 교수의 비판에서 가장 아쉬운 건 “‘민주화세력의 집권으로 망가진 대한민국’이라는 보수세력의 결론과도 맞닿는다”는 대목이다. 이 논법은 여야를 막론하고 과잉 정치화된 네티즌들의 단골 메뉴인데, 이런 사고방식이 한국정치를 전투적 갈등 구도에 묶어둔다는 점에 주목해보는 게 좋겠다. 그런 식으로 ‘적과 아군’의 이분법으로 몰아가면 사실상 ‘내부 비판’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원론 차원에서는 좋은 말을 하지만,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는 (학자로서) 무책임한 것이다”라는 말씀도 지나친 것 같다. 최 교수는 실천 가능한 대안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역설해왔다. 예컨대, 그는 이론적 수준, 가치와 신념의 차원, 운동의 차원에서 신자유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비자유주의 모델’을 대안적 정책으로 집행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전면적으로 검토하려는 노력이 없다고 비판했다.
● 적과 이군 이분법은 아쉬운 대목
최 교수 스스로 내놓은 대안이 없지 않느냐는 반론도 가능하겠지만, 그건 역할 분담 차원에서 봐야 하지 않을까? 백 교수가 분단체제라는 거대담론을 다루듯, 최 교수도 큰 흐름을 짚어주는 게 그의 소임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한 지식인이 ‘거시’에서 ‘미시’에 이르기까지 다 다루지 않는다고 ‘무책임’하다는 말을 듣는다면, 지식인은 다 정책기획가 노릇을 해야 한단 말일까?
백 교수가 분단 체제를 바로 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약간의 논란을 일으켜보고자 하는 생각’으로 그리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는 하지만, 참여정부의 현실도 바로 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백 교수의 문제의식엔 십분 공감하지만, 아무래도 논란을 위한 ‘표적’을 잘못 잡은 것 같아 그 점이 아쉽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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