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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새 산문집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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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새 산문집 '소풍'

입력
2006.05.1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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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성석제씨가 겉절이에 밥 비벼먹는 방법이다.

“숟갈을 두 개씩 양손에 나눠들고 ‘썩썩’ 비빈다. 이 ‘썩썩’이 중요한 점이다. 황소가 풀을 먹을 때처럼, 싸리 빗자루로 마당을 쓸 때처럼 힘있고 숙달된 자세, 힘의 낭비가 없되 힘있게, 숨이 죽는 동안 삼투압 작용으로 겉절이에서 나온 물이 비비는 일을 쉽게 한다.(…) 향긋한 맛. 이건 참기름의 공로다. 산뜻한 질감. 이건 배추의 공덕이다. 혀를 바쁘게 하는 양감. 이건 밥의 은혜다.(…) 대부분은 과식을 한다.”

그의 신작 산문집 ‘소풍’(창비 발행)의 한 대목이다. 그가 먹은 음식의 맛, 함께 한 사람들의 맛, 어울렸던 세월의 맛을 한 데 ‘썩썩 비빈’ 책이다.

“소풍을 가듯 시간의 한 부분을 툭 끊어서 길을 떠났다. 뭘 맛본다는 것, 맛을 기억하며 소요(逍遙)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이고 방심한 상태에 스스로를 처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도 밥 먹을 때는 건드리지 말라는 말이 있는지도 모른다.”(‘책 머리에’에서)

위에서 인용한 군침 돋구는 겉절이 찬가 끝에 그는 1980년 휴교령으로 고향으로 내려가 친구들과 모내기를 돕다 논두렁에서 먹었던 겉절이 비빔밥 - 그야말로 ‘입속에 가득차는 환희 - 의 기억을 슬쩍 버무려 둔다. 그런 식이다.

그는 “음식을 만들고 나누고 먹고 이야기하는 것, 이 모두가 ‘음식’이라는 말로 뭉뚱그려진다고 할 때 음식은 추억의 예술이며(…) 감각 총체 예술이다. 음식에 관한 기억과 그에 관한 이야기는 필연코 한 개인의 본질적인 조건에까지 뿌리가 닿아 있다”고 적었다. 그리고,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숙제를 해치우듯’ 먹어서는 안 되며 ‘소요하듯’ 즐겨야 한다고, 그래서 ‘소풍’이라고 했다. “음식을 먹는 것이 소풍이라면 음식 이야기 역시 소풍이며, 무릇 이야기란 또한 우리 삶의 소풍과 같은 것이다.”

너비아니 김밥 닭개장 부대찌개 등 끼니 음식(1부), 냉면 라면 등 국수류(2부), 김치 석화젓 등 곁다리 음식(3부), 국화차 소주 등 마실 거리(4부), 해서 그가 들려주는 음식 이야기는 50여 편이다.

미국 보스턴 월든 호숫가 소풍 길에 먹었던, 있는 대로 김과 밥과 김치로만 싼 소박한 ‘정신의 왕족 헨리 데이비드 소로 영감 김밥’의 맛, 이동갈비 2인분을 거의 혼자 다 먹어치우는 친구 이야기, 중국 베이징의 한 백화점 찻집에서 맛 본 국화차의 맛을 떠올리며 그는 “그 국화차는 어쩌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적고 있다. ‘같은 공간의 같은 침묵, 같은 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 순간, 그 사람을 맛보았다는 느낌으로 행복하다. 슬프다.”

지난 해 북한에서 열린 남북작가대회의 고된 일정 중 삼지연공항에 들렀을 때, 땡볕을 피해 그늘진 돌 바닥에 퍼질러 앉아 현지에서 산 북한 음식 자료들을 펼쳐놓고 흡족해 하던 그가 떠오른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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