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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경국대전을 외국어로 번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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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경국대전을 외국어로 번역하자

입력
2006.05.1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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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세계에 알리자. 우리의 민족적 저력과 문화적 우수성을 세계 사람들이 제대로 알게 하자. 그러면 우리 기업이나 상품도 쉽게 세계무대로 나갈 수 있고, 노벨문학상도 건질 수 있다.’ 대략 이런 것이 ‘세계로 나아가자’는 구호요 그 목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우리 문학작품도 번역하고, 세계도서박람회의 주빈국으로도 활동하고, 우리 영화도 만들어 공세적으로 세계시장으로 뛰어들자는 것이다.

● 베트남 여조형률은 영·불어 완역

이런 노력도 좋다. 그런데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일로 노벨상에 목매는 이러한 방법과, 유구한 역사 속에서 우리네 삶의 층이 겹겹이 쌓이고 그 지혜가 녹아있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차근히 알리는 방법 중 어느 것이 더 깊이있고 의미가 있을까?

긴 호흡으로 생각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의 생활패턴에는 단기적 효과를 내는 방법이 더 선호되겠지만, 진정 저력있게 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유산을 전 세계 사람들이 접근가능한 언어로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하나가 오늘날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우리의 문화유산에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어떤 학회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법학자로부터 ‘한국에는 중국법을 적용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 사람을 무식하다고 하기 전에 먼저 그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언어로 된 우리 법의 역사와 자료가 그렇게도 없었던가 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시장경제로 전환하여 날로 고도성장을 하고 있는 베트남을 한 번 보았다. 온통 돈독이 올라 문화까지도 돈벌이로만 보는 우리 기준으로 보면, 지금 베트남의 형편에서는 그 나라의 문화유산이고 뭐고 간에 돈되는 것을 먼저 할 일이지 자기 역사의 우수성과 문화민족을 알릴 형편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게 아니다.

베트남에 현재 잔존하는 최고(最古)의 법전이 15세기 초반에 창건된 여조(黎朝)시대의 ‘여조형률(黎朝刑律)’인데, 이런 법전이 이미 영어와 프랑스어로 완역되어 있고, 외국어로 된 연구문헌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 돈벌기 한류 앞서 우리를 알려야

이를 통하여 이조(李朝)와 진조(陣朝)를 이어 우리나라의 조선 초기에 해당하는 여조시대 베트남의 높은 문화 수준과 국가체제를 알 수 있다. 이는 중국의 당률(唐律)과 명률(明律)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베트남의 고유 법규범도 많이 들어 있다.

이를 보면 '우리도 내놓을 것이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이 다름아닌 경국대전(經國大典)이다. 우리나라 사람도 경국대전의 내용을 잘 모르는데 외국인이 어찌 알겠느냐 할 것이지만, 베트남의 경우를 보면 외국인들이 쉽게 접근하게 만들어 놓았고, 그 결과 외국어로 된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

한 나라의 수준을 보려면, 그 나라의 법체계를 보면 알 수 있다. 법체계가 곧 국가체제이고 생활체제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에도 그 유명한 당률과 대명률(大明律), 대청률(大淸律)이 각기 ‘The Tang Code’, ‘Great Ming Code’, ‘Great Ching Code’로 번역되어 있으며, 이 법전들을 통하여 외국인들은 중국의 높은 국가체제와 문화체계를 이해한다.

일본도 마찬가지일뿐 아니라 자기네 문화유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많이 등록하여, 결국 오늘날 아시아라고 하면 중국과 일본이 그 문화의 원류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한국은 빠져 있다. 사실은 일본의 그 많은 문화가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것이지만, 이를 외쳐봐야 외국인들에게는 공허하게만 들린다.

문화가 돈이라고 날뛰는 나라에서 ‘경국대전을 외국어로 번역하자’라는 메시지를 이렇게 길게 설명해야 감이 오는 지경이니,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유구한 아시아문화권에서 한국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외국인에게 어떤 방식으로 답할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정종섭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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