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가 14일 경찰의 원천봉쇄에도 불구하고 경기 평택에서 대규모 집회를 강행했으나 큰 충돌은 없었다.
한총련과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 4,000여명은 팽택시 팽성읍 대추리에서 1㎞가량 떨어진 본정농협에서 열리는 ‘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날 아침부터 진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경찰이 196개 중대 2만여 경찰력을 동원, 대추리와 도두리로 들어가는 모든 진입로를 봉쇄하자 시위대는 대추리는 물론 본정농협에도 접근하지 못하고 본정리에서 평화적 집회를 가진 뒤 오후 4시20분께 자진 해산했다.
각목 등을 이용한 폭력시위와 이에 맞선 강경진압은 없었지만 시위대가 스크럼을 짜고 경찰저지선을 뚫는 과정에서 양측 10여명이 부상했다. 경찰은 대추리 진입을 시도하며 돌과 흙을 던진 과격시위자 등 36명을 연행했다.
시위대 해산
이날 시위는 시위대 주력이 본정삼거리 부근에서 경찰에 완전 포위되면서 싱겁게 막을 내렸다. 경찰은 대추리로 향하는 주요 길목인 본정리 일대에 경찰 70개 중대 7,000여명을 2중3중으로 배치했고 오전 11시께 이 곳에 운집한 시위대 4,000여명을 완전 에워쌌다.
시위대는 포위망을 뚫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여의치 않자 도로 위에 300㎙정도 길게 늘어서 연좌농성에 들어갔고 그나마 방송시설이 없어 육성에 의지한 시위를 벌였다. 더운 날씨에 3㎞안팎을 걸어오느라 흥도 맥도 빠져버린 시위대는 오후 3시가 넘어서면서 서서히 해산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갔다.
시위대는 타고온 차량을 주차시켜 놓은 본정리 인근과 계양삼거리, 충남 아산시 둔포사거리로 이동해 해산했고 일부는 노선버스 등을 이용해 평택역으로 가 전철을 이용해 상경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 일부는 경찰 호송버스를 가로막고 연행자 석방을 요구했으며 경찰이 “간단한 조사만 마치고 연행자를 모두 풀어주겠다”고 약속하자 버스를 통과시키기도 했다.
현장 시위상황
시위는 오전 8시께 한총련과 민주노총 회원 등 2,000여명이 평택시 팽성읍 노양리 계성초등학교 앞에 집결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들은 버스 20여대에 나눠 타고 45번 국도를 통해 충남 아산시 둔포면에 하차한 뒤 약 3㎞의 농로를 따라 현장에 도착했다.
계성초등학교는 본정리-함정리-대추리로 이어지는 최단 코스다. 나머지 시위대도 경찰의 검문검색을 피해 45번 국도변에 하차한 뒤 소규모로 2∼3㎞를 걸어 본정리에 속속 합류했다.
오전 10시 3,000여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본정리를 거쳐 미군부대 왼쪽 담장을 끼고 나 있는 농로로 향하기 위해 왕복 2차로 포장도로와 농로를 따라 본정농협으로 향했다. 시위대는 돌과 흙을 던지며 경찰과 산발적인 몸싸움을 벌여 시위대와 경찰 등 10여명이 부상했다.
하지만 오전 11시가 지나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시위대 규모는 4,000여명으로 늘어났지만 배 가까이 되는 경찰 병력이 본정삼거리 부근에서 시위대를 완전히 포위했고, 오도가도 못한 시위대는 연좌농성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평화시위를 표방한 시위대는 죽봉 등 도구도 준비하지 않았다. 경찰도 진압을 자제했다.
과격시위 반대집회
‘전ㆍ의경 부모의 모임’ 50여명도 오후 1시30분께 경찰과 시위대가 대치하고 있는 본정농협 앞 집회현장을 방문해 폭력시위 자제를 호소했다. 팽성상인연합회 100여명은 이날 오후 대추리 집회에 맞서 미군기지정문 인근 하워드호텔 앞에서 “범대위 해산” 등의 구호를 외치며 미군기지이전 찬성집회를 열었다.
국방부는 시위대의 난입에 대비해 이날 아침부터 철조망을 따라 50m간격으로 시위장비로 무장한 경계병력 1개 분대씩을 배치, 경계를 강화했다.
특히 시위대의 진입통로로 예상되는 주요농로에는 무장을 강화한 경계병들을 배치했다. 군은 또 군 헬리콥터를 동원, 애국가를 틀고 과격시위를 자제해달라는 유인물 수백 장을 투하하기도 했다.
정부는 15일부터 평택 기지 이전 예정지를 측량할 예정이다. 안정훈 국방부 대변인은 “지적공사가 부지 외곽에 대한 경계 측량을 1차로 실시한 뒤 한미 합동 경계측량이 진행된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측량작업과 함께 이 달 중 지반조사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이범구 기자 goguma@hk.co.kr평택=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 범대위 평화시위로 돌아서나
‘평화적이고 대중적인 대회 성사를 위해 노력한다.’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범대위)가 14일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면서 각 시민사회단체에 보낸 행동지침이다. 실제 집회현장에는 5일 충돌과정에서 들고나왔던 각목이나 죽봉은 등장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범대위가 평화시위로 돌아선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5일 철조망을 뚫고 숙영지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시위대가 무방비의 군인들을 공격하는 폭력적인 모습이 공개되면서 범대위측에 비난이 쏟아지자 시위방식을 바꿨다는 것이다.
윤광웅 국방장관이 “국가안보의 최후 보루인 군대가 민간인에게 폭행당하는 모습에 전 국민이 경악했다”며 공세를 펴고 군형법 적용 등 엄단방침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범대위에 역풍이 분 게 사실이다. 한명숙 총리의 폭력시위 자제 요청도 먹혀 들었다는 분석이다.
범대위측은 국방부와 경찰이 시위대의 폭력을 불렀다고 항변하고 있다. 범대위 관계자는 “4일 행정대집행 철조망 설치 과정에서 진압봉을 먼저 휘두른 것은 경찰이었고 군대라는 국가적 폭력을 동원한 장본인은 국방부”라고 말했다. 범대위는 앞으로도 평화집회 노선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기지이전에 반대하는 범대위 및 주민과 정부의 대화가 순조롭지 못할 경우 대추리 갈등은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주민들은 국방부가 철조망을 열지 않으면 캠프 험프리스를 넘어서라도 논으로 들어가 영농활동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방부는 주민들이 6월말까지 이주를 완료하지 않으면 법적 절차를 거쳐 강제집행도 불사한다는 방침이어서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 한 재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평택=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 정부 "평택 주민들과 대화 곧 재개"
한명숙 총리가 평택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약속한 데 이어 14일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범대위)가 대규모 평택시위를 평화적으로 마무리함으로써 대화를 통한 사태해결의 실마리가 잡혔다. 총리실 산하 주한미군대책기획단은 지난해 5월 이후 단절된 기지이전에 반대하는 주민들과의 공식대화를 조만간 재개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주민들과의 대화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고있다. 정부차원에서 마련해 놓은 평택지원특별법에서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대부분 담고있는 데다 주민들의 추가요구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방침이기 때문이다. 보상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주민들에게는 한미 양국간 약속으로 진행하는 사업이 차질을 빚지 않도록 협조해 줄 것을 당부하는 한편 소작농이나 보상액이 적은 주민들에게는 생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각종 지원책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범대위와의 대화. 대책단의 한 관계자는 “범대위의 주장은 주한미군 재배치 전면 재검토, 주한미군의 철수 등 이념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대책단 수준에서 제시할 해결책이 없다”고 털어놨다. 외교부와 국방부가 협조해서 주한미군 재배치와 기지이전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국민적 공감대를 만드는 작업 이외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범대위는 제3자까지 참가하는 사회적 협의기구를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범대위가 계속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 경우 대화는 겉돌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기지규모를 축소하라는 범대위의 주장을 별도 채널에서 논의할 여지를 남긴다면 범대위와 대화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곤 기자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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