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지방선거 득표전이 저질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여야가 ‘거짓말쟁이’, ‘바보’, ‘찌질이’ 등 유치한 원색적 표현을 불사하며 상대 당과 후보를 흠집 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 때문에 경쟁자 공약의 맹점을 파고드는 정책검증 노력은 갈수록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선거전 초반 입을 모아 “정책선거를 하겠다”던 여야의 약속은 어느 새 구두선이 돼가고 있다.
수도권에서 열세를 보이고 있는 열린우리당은 최근 한나라당 후보 개인의 자질시비에만 몰두하는 모습이다. 8일 한나라당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보안사 근무 등 ‘오 후보 검증 13제’를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자격과 자질을 문제 삼으며 오 후보에게 해명을 내놓으라고 연일 압박하고 있다.
12일에는 오 후보를 ‘위장서민’으로 규정하며 강북 표심을 자극했다. 또 오 후보의 서울시장 출마 전 정수기 광고출연을 이유로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키로 했는가 하면, 한나라당 김문수 경기지사 후보에 대해서는 병역회피 의혹을 제기하는 등 후보 때리기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이 같은 우리당의 공세를 ‘네거티브’ 선거운동으로 규정, 후보 차원의 대응을 거의 하지 않으면서도, 참여정부와 우리당에 대해선 도가 지나친 비난을 쏟아냈다. 한나라당이 최근 당원들에게 배포한 지방선거 필승가이드북은 네거티브 선거를 사실상 부추기고 있다. “칼만 안든 세금강도정권”, “우리당은 벼룩의 간을 먹고 빈대의 피를 빠는 당비 갈취당” 등 자극적 표현을 후보들의 연설문에 넣도록 한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우리당 의원은 찌질이”라는 표현으로 도마에 올랐다.
이런 가운데 여야 서울시장 후보진영은 얼마 전 양자 TV토론 무산에 대해 “비겁한 행동”(우리당), “양자토론에 합의한 적 없다”(한나라당)며 책임공방까지 벌이고 있다.
여야의 저질공방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상대 후보의 자질 논란을 확산시켜 반사 이득을 얻어 수도권 등에서 밀리고 있는 판세를 뒤집으려는 우리당의 전략과 정권과 우리당의 실정을 집중 부각해 고정표를 지키겠다는 한나라당 의도 때문이다.
여기에는 당이나 후보의 공약과 정책으로는 표심을 끌어오기에 선거 풍토 상 한계가 있다는 여야의 판단도 한몫하고 있다. 결국 당장 눈앞의 승부에 집착한 근시안적 전략이 선거 양상을 과거로 되돌리고 있는 셈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대 교수는 “여야는 2002년 대선 당시 비중이 없던 정동영 의장이나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오세훈씨가 대권후보나 서울시장후보로 부상한 이유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이 바라고 지지를 보내는 것은 네거티브 전략으로 선거에서 무조건 이기려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의 정치적 역량과 결단을 보이는 인물이라는 얘기다. 장 교수는 “결국 네거티브로 가는 것은 여야는 물론 출마 후보들이 공약과 정책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지방선거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