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지막 전사자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았다. 전쟁의 마지막 날에도 몇몇 용감한 병사들은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산 자들은 너무도 빨리 그 모든 것을 잊는다.’ 그 망각증에 그는 사망 선고를 내렸다.
이름 뒤에 이즘을 붙이면 하나의 단어가 되는 사람,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대살육의 현장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그의 이름에서 파생한 명사인 ‘카파이즘’(Capa-ism)의 현장은 이를테면 그런 것이었다. 책은 로버트 카파의 2차 대전 종군기다. 1936년 스페인 내전 현장에 가서 찍은 사진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으로 세계를 들끓게 한 뒤, 세계적 보도사진 에이전시의 대명사인 매그넘을 창시한 그가 남긴 뜨거운 기록이다. 포토저널리즘이란 말이 바로 그 사진에서 비롯됐다.
이어 그는 1941년부터 1945년까지 2차 세계대전에 휩싸인 유럽의 전장으로 달려갔다. 그의 카메라가 포착한 수많은 장면들 중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 미군의 오마하 상륙 현장을 찍은 사진은 다시 한번 그의 진가를 만방에 알렸다.
41세 때인 1954년. 그는 전쟁의 광기가 들끓고 있던 인도차이나에 있었다. 피비린내 나는 몇 컷의 사진을 대가로 그가 베트남에서 돌려 받은 것은 지뢰 폭발이었다. 어느 전장에서건 병사보다 더 적진 가까이 다가가서 촬영하는 그의 정신은 결국 목숨을 앗고 말았다.
소설가 스타인벡이 말했듯이 그의 사진은 정신의 도구였다. 책에 수록된 65점의 사진 자료들은, 죽음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카파가 목숨을 담보로 포착한 이미지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전투 장면을 단박에 허구로 만들어 버리는 장면들을 필름에 담을 때, 카파의 손은 과연 떨리고 있었을까?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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