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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5·31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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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5·31 단상

입력
2006.05.1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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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트루먼과 니키타 흐루시초프와 샤를 드골이 앞서거니뒤서거니 세상을 뜬 1970년대 초, 하느님이 이들의 영혼을 한 자리에 불러모았다. “너희들 소원을 하나씩만 들어주마. 우선 해리, 네 소원이 뭐냐?” “제가 막 떠나온 저 아름다운 행성에서 소련 빨갱이들을 쓸어버리는 것입니다.” 트루먼 독트린이라는 것으로 냉전의 방아쇠를 당긴 미국 대통령다웠다.

“음, 그래? 니키타 너는?” 한 때의 소련공산당 제1서기가 대답했다. “제가 이 곳에 와서도 결코 무심할 수 없는 인류 행복을 위해 미제국주의자들을 지상에서 말끔히 청소하는 것입니다.” 흐루시초프 동지가 재임 중 입에 올렸던 동서 평화공존론은 본심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 샤를 얘기도 마저 들어보자. 네 소원은 뭐냐?” ‘조국의 영광’을 입에 달고 살았던 프랑스 제5공화국 첫 대통령은 한껏 겸손하게 대답했다. “전 딱히 바라는 게 없습니다. 다만, 이 두 친구의 소원을 꼭 들어주십시오.”

● 우리당·한나라의 상대방 심판론

오래 전에 들은 이 우스개를 떠올린 것은 5ㆍ31 지방선거를 겨냥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한 슬로건 때문이다. 우리당이 내세운 것은 지방정권 심판론이고, 한나라당이 내세운 것은 노무현 정권 심판론이다. 이 슬로건들에는 꽤 큰 정당성이 담겨 있다.

한나라당의 지방정권 장악이 10년째 계속됐다는 우리당 의장의 말은 부정확하지만, 공천헌금-단체장 비리-사법처리의 악순환이 한나라당에서 유난히 두드러진 것은 사실이다. 고인 물이 썩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만큼, 지방정부들을 한나라당 손아귀에서 풀어주어야 한다는 여당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반면에 한나라당 주장 역시 엉뚱하진 않다.

지방선거는 지방선거일뿐이라는 지방-중앙 분리론이 언뜻 그럴 듯해 보이긴 하지만, 외국 예를 들 것도 없이 지방선거는 중앙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띠게 마련이다. 그리고 노 정권 세 해 남짓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여러 여론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차갑다.

양대 정당 이외 소수 정당들은 즐겁게도 하느님 앞의 드골 처지에 놓였다. 딱히 더 바랄 게 없는 것이다. 그저 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소원을 유권자들이 동시에 들어주기만 바라면 된다. 다시 말해, 우리당에도 표를 주지 않고 한나라당에도 표를 주지 않음으로써 노 정권과 지방정권을 동시에 심판해주기만 바라면 된다.

거센 근친증오에도 불구하고 우리당과 민주당이 이념적 혈연적 형제당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하느님 앞에서 드골이 한 말을 유권자들에게 거리낌없이 할 수 있는 정당은 민주노동당뿐이다. 재벌 규제와 조세개혁에서부터 비정규직 문제와 한미 FTA에 이르기까지, 민노당은 일관되게 양대 정당과는 다른 진단과 처방을 내려왔다. 아직까지는 부패로부터도 자유롭다.

제 소원이야 불감청이고 그저 양대 정당의 소원이 동시에 이뤄지기만을 바랄 민노당의 소박한 꿈은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이뤄질 것 같지 않다. 유권자들 일부는 우리당의 소원에만 귀기울이는 듯하고, 나머지 유권자는 한나라당의 소원에만 귀기울이는 듯하다. 앞쪽 유권자들은 지역적 정서적으로 찢기고 갈라져 있거나 정치판에 넌더리가 나 있다.

이 분열과 넌더리에는 여권 책임이 크다. 뒤쪽 유권자들은 ‘주류의 복수’라는 일념으로 똘똘 뭉쳐 있다. 이 총화단결에도 여권의 공이 크다. 결국 많은 관찰자들이 내다보듯, 이번 선거에선 한나라당의 소원만 이뤄질 것 같다. 게다가 이 ‘부패정당’은 지금보다 더 센 악력(握力)으로 지방정부들을 틀어쥐게 될 것 같다.

● 사이에 낀 소수정당 억울한 매

여권에게 이것은 인과응보다. 때깔 좋은 ‘개혁-진보’ 옷감으로 몸을 칭칭 두른 채 허영 놀이와 헛발질에만 몰두해왔으니, 매를 맞아도 싸다. 그러나 민노당에게 이것은 남의 매를 나눠 맞는 격이다. 여권이 이 점을 생각하면, 이번 선거에서 참패하더라도 조금은 ‘위안’이 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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