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관훈클럽 초청토론회 준비로 잠을 설쳤던 강 후보는 9일에도 새벽부터 바쁜 일정을 보내야 했다. 강 후보는 오전 6시께 잠을 깨 7시40분부터 10여분간 진행되는 불교방송 라디오 시사인터뷰를 준비했다. 전화 인터뷰이기 망정이지 TV 출연이었으면 준비와 이동시간 때문에 1시간은 더 일찍 일어났어야 할 판이다. 특히 언론인터뷰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그는 “사전질문서에 없는 돌출질문이 많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날도 라디오 사회자는 인터뷰 말미에 “출마를 생각하지 않다가 소신을 바꿨는데…”라는 질문에 강 후보가 정색했다. “평범한 시민으로 살다 출마를 고민한 것이지 소신이 바뀐 게 아니다”고 당차게 답했다.
강 후보에게 최대 고역은 부족한 잠이다.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도 7~8시간동안 잠을 잤지만 출마 선언 후 3~4시간 밖에 자지 못한다. 긴장 탓에 이동 중 승용차에서 토막잠도 자지 못해 체력소모는 더하다.
■ 오전 10시. 선거포스트용 사진 촬영 역시 만만한 일이 아니다. 아침 일찍 헤어숍에서 메이크업을 했다. 이어 기품과 당찬 이미지를 표출하기 위해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며 겨우 촬영을 마쳤다. 그리곤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동교동으로 향했다. 김 전 대통령의 무게감 때문인지 강 후보의 얼굴엔 긴장이 감돌았다. 그는 “인사도 드리고 제안을 드릴 일도 있다”고 말했지만 어떤 제안인지에 대해선 묵묵부답이었다.
■ 다음은 오후 1시 서대문구 합동의 구세군 브릿지센터 방문. ‘사회적 약자’ 방문 투어의 첫 행선지로 노숙자 쉼터를 잡은 것이다. 자원봉사자 차림의 강 후보는 노숙자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했다.
강 후보를 수행한 김형주 의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하철을 타면 주변 승객에게만 겨우 악수를 건네는 등 수줍은 성격이었는데 많이 달라졌다”며 “정치인으로 진화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고 했다. 강 후보의 오랜 지인으로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조광희 변호사는 “강단이 있는 사람은 감성이 부족하기 마련인데 강 후보는 강단과 감성을 겸비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강 후보는 여기서 취재 중인 사진기자들에게 “노숙자들의 얼굴이 나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직접 주문했다. 인권침해를 우려하는 법률가 기질이 은연중에 드러났다.
강 후보는 요즘 맹렬한 화학반응을 거치고 있는 중이다. 평범한 일상을 즐기던 일반인이나 법률가로서의 기질과 대중정치인으로서의 기대역할 사이에 충돌과 조응 과정에 있다.
측근인 조 변호사는 “선거는 쇼 비즈니스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후보의 행동과 말, 장소 하나하나가 준비되고 대중과 미디어의 노출에 맞춰지는 선거에서 강 후보도 예외는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이질적 문화에 초보정치인 강 후보도 아주 빠르고 야무지게 선거에 적응하고 있다.
그는 노숙자 쉼터에서 모 방송사의 갑작스러운 월드컵 응원멘트 요청에 “즐겁게 싸우면 4강도 문제없다”는 순발력을 발휘한 것도 적응속도를 보여준다. 강 후보는 “캠프사람들로부터 학습능력이 뛰어난 학생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농담도 했다.
■ 오후 일정은 더 피곤했다. 10일 녹화 예정인 정당연설문 작성과 경실련 주최 토론회 준비 때문이다. 2시30분께 광화문의 개인사무실로 돌아온 강 후보는 정당연설문을 다듬느라 4시간 이상 머리를 싸맸다.
선거캠프의 메시지팀장이 전날 밤을 세워 작성한 원고를 거의 개작수준으로 고쳤다. 한 실무자는 “결벽에 가까울 만큼 논리의 완결성을 추구하는 성격때문”이라고 했다. 구호가 앞서고 쉬운 표현이 일반적인 대중연설과 달리 다소 딱딱하고 낯설게 보이는 것도 이 때문으로 여겨진다.
■ 강 후보는 10일의 토론회와 정당연설문 작성준비로 10일 새벽 1시께 잠자리에 들었다. 삼성동 자택이 아닌 사무실에서다. 강 후보는 “솔직히 하루하루가 고되다”면서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힘을 얻고 새롭게 배운다”고 말했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 강금실 후보, 의상도 경쟁력
강금실 후보는 9일 모처럼 보라색 정장을 입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을 방문한 자리에서다. 평소 바지를 선호하는 강 장관이지만, 이날은 치마 차림이었다. 같은 날 선거포스트 사진촬영이 있기도 했으나, 무엇보다 김 전 대통령 내외에 대한 예를 갖추기 위한 것이다.
강 후보는 서울시장 출마 선언 당시만 해도 보라색 차림과 귀걸이, 스카프 등을 즐겨 착용했다. 통합적인 퍼플오션 이미지를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보라색 계통 옷을 거의 입지 않았다.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가 등장하면서 ‘이미지 선거’에 대한 부정적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 자택 방문 후 2시간 뒤 서대문구 합동 구세군 노숙자 쉼터에 나타난 강 후보는 ‘자원봉사 아줌마’로 변신해 있었다. 베이지 색 계통의 평상복에 얼굴 화장도 지웠다. 치마도 바지로 바뀌었다. 후보 차량에서 급히 갈아입은 것이다.
강 후보의 측근은 “노숙자를 만나는데 정장 차림은 맞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라며 “하루 일정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간혹 생긴다”고 말했다. 여성 후보이기에 겪는 번거로움이자 특권인 셈이다.
정진황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