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다국적 제약사 화이자가 나이지리아 어린이에게 검증되지 않은 임상 시험 약을 불법 투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다국적 제약사가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약물 시험을 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워싱턴포스트는 7일 나이지리아 의학 전문가위원회를 인용, 화이자가 1996년 나이지리아에서 뇌수막염이 유행하자 북부 카노시의 한 병원에서 뇌수막염을 앓던 어린이와 영ㆍ유아 100명에게 나이지리아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아직 검증을 마치지 않은 항생제 ‘트로반’을 투여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약물이 투여된 100명 가운데 5명은 숨졌고, 다른 어린이들은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다. 다만 사망 원인이 항생제 때문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또 유사 약을 투여한 어린이 6명도 사망했다.
이 신문은 이 같은 화이자의 행위가 사실이라면 이는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며 적절한 제재를 받아야 한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특히 거대 다국적 제약사가 선진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러한 시험을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에게 자행하고 있다는 의혹이 이 문제로 판명된다면 끔찍한 비극이라고 논평했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공개하라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간 관련 비밀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워싱턴포스트는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보고서 사본을 얻어 단독 보도했다. 이 보고서는 “화이자가 약이 투여된 어린이나 그 부모에게 임상 시험이라고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화이자는 성명을 통해 “당시 어린이들의 부모들은 구두로 시험 약이 그들의 어린이들에게 사용돼도 좋다고 동의했고, 나이지리아 정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반박했다. 화이자는 “우리는 절대로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시험 약이 어린이들의 생명을 구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아직 트로반을 어린이에게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FDA는 2년 전 트로반을 어른에게 사용하도록 승인했지만 중대한 간 손상 및 사망 위험성으로 인해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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