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목에 파란색 고무 밴드가 걸려 있다. 전자파를 없애주고 건강에 좋다는 음이온 팔찌다. 한 대형마트에서 샀다. 물건을 7만원어치 이상 사면 5천원 할인해 주는 쿠폰이 있었는데, 식료품들로 7만원을 채우지 못해 그걸 사게 됐다.
계산대 앞에 네 가지 다른 색깔의 팔찌들이 비치돼있었다. 수익금이 불우이웃 돕기에 쓰인다는데, 파란 팔찌에는 ‘3 Times a Day’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결식아동을 생각하는 팔찌다. ‘3 Times a Day’라니. 볼수록 슬픈 영어다. 아이에게 하루 세 끼를 먹일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많다고 한다. 결식노인도 많을 것이다.
지금은 어른이 된 조카가 꼬마였을 때 일이다. 같이 호숫가 벤치에 앉아 있는데 조카애가 두어 입 베어 먹은 빵을 휴지통에 던졌다. 못된 짓 한다고 내가 꽥 소리를 지르자 그 애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잠시 후 휴지통에 다가가 그 옆에 떨어진 빵을 주워서 얌전히 휴지통에 넣었다.
빗 맞혀 풀밭을 어지른 걸 나무란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애에게 ‘3 Times a Day’에 대해 얘기해 줬으면 좋았을 걸, 기가 막혀 웃기만 했다. 다른 팔찌들에는 무슨 슬픈 영어들이 새겨져 있을까?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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