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에 있는 중견 기업에 다니는 회사원 남모(32)씨는 ‘제2의 고(高)3’을 보내고 있다. 퇴근하자마자 노량진의 학원으로 향하는 그의 가방에는 공무원 시험 준비서가 가득하다. 연봉 3,400만원을 받고 있는 남씨는 왜 뒤늦게 공무원을 꿈꾸는 걸까. “10년 후 내 모습이 뻔하잖아요. 언제 해고될지 몰라 불안에 떨고 있겠죠. 좀 적게 벌어도 구조조정 걱정 없는 공무원이 돼 ‘가늘게 길게’ 살기로 했어요.”
공무원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대학생이 선호하는 직업 중 최근 몇 년 간 부동의 1위다. 배우자의 희망 직업 조사에서도 공무원은 항상 맨 윗자리다. 공무원 부부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매년 뜀박질하는 시험 지원자 수에서 공무원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2000년 4만5,000여명이던 7급 공무원 시험의 지원자는 지난해 7만8,000명까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린다. 올해 9급 공무원 시험에는 사상 최대인 18만8,321명이 지원했다. 최근 외교통상부 사무보조원(기능 10급) 4명을 뽑는 시험에는 1,800명이 몰렸다. 노량진의 공무원시험학원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공무원 시험 준비생은 약 40만명 정도”라며 “8일부터 7급 공채 원서접수가 시작되면 노량진 학원가는 더욱 붐빌 것”이라고 말했다.
왜 공무원을 선호할까. 고용시장이 불안정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정년 보장, 은퇴 뒤 노후를 보장해주는 공무원 연금, 다양한 복리후생 등 두드러져보이기 때문이다.
‘치명적인 하자가 없는 한’ 공무원은 6급까지 57세, 5급 이상은 60세까지 정년을 법적으로 보장 받는다. 언제 해고통보서가 날아올지 모르고 ‘사오정(40, 50대 퇴직)’ ‘삼팔선(38세 이전 퇴출)’이라는 말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공직 만큼 안전지대도 없다. 직장인 3명 중 1명은 공무원이 되고 싶어한다는 조사 결과도 이 때문이다.
퇴직 뒤에 받는 공무원연금은 국민연금보다 더 많다. 가입자가 내는 총 보험료 대비 연금액을 나타내는 평균 수익비를 비교하면 공무원연금은 국민연금보다 60~70%가 높다. 지급 기준도 공무원연금이 유리하다. 국민연금은 가입 기간 전체 표준 소득월액의 30%를 주지만, 공무원 연금은 봉급이 최고에 달하는 퇴직 전 3년 평균 보수의 50%를 지급한다. 공무원 연금은 현재 적자로, 부족분은 세금으로 보전하고 있다.
보수도 중견 기업 수준까지 올랐다. 2000년부터 진행된 공무원 보수 현실화 5개년 계획의 결과다. 수당도 많다. 정근수당 가족수당 주택수당 기말수당 가계지원비 자녀학비보조(전액)수당 효도수당 등 40개가 넘는다. 중앙인사위원회 홈페이지에는 수당에 대한 질문이 하루에 10여건 넘게 들어온다. 수당을 합쳐 9급의 초임은 월 150만원, 7급은 월 200만원 정도.
뿐만 아니다. 공무원은 지난해부터 복지카드를 받고 있다. 직급이나 호봉에 따라 연 100만원 가까이 자기계발비로 쓰는 카드다. 보약 학원비 치과치료 등에 사용한다. 재직 중에 국비로 국내 대학원이나 외국 유학도 갈 수 있다. 신분증 하나만으로도 곧바로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은 공무원이 거의 유일하다.
과거 정부 출범 때마다 조직 축소, 숙정 바람 등으로 공무원 사회가 된서리를 맞았지만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공무원 우대 기조가 유지되면서 처우가 크게 개선된 점도 공직 사회에 대한 인기를 높이고 있다.
식지 않는 공무원 열풍에 대한 우려도 있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젊은이들이 안정적이고 편한 직장만 원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젊은이들의 도전정신이 약해지면 사회의 역동성 또한 덩달아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김일환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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