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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6명 난민자격 美입국/ 탈북→북송→재탈북 수차례 죽을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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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6명 난민자격 美입국/ 탈북→북송→재탈북 수차례 죽을 뻔

입력
2006.05.08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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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6명은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탈북과 북송, 재탈북을 거듭한 끝에야 미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이들은 6일 새로운 안식처에 정착하기까지, 길게는 8년, 짧게는 2년 동안 노예처럼 팔려 다니며 모진 시련을 겪어야 했다.

함북 청진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A(34ㆍ여)씨는 1998년 5월 탈북을 도와주겠다는 한 남자 손님의 말을 믿고 처음 압록강을 넘었다. 하지만 그는 인신매매 브로커였고 A씨는 중국의 한 시골 마을로 팔려갔다. 2000년 만삭의 몸으로 중국 공안에 체포된 A씨는 북송돼 고초를 겪다 2002년 또다시 중국으로 탈출했다.

B(32)씨는1998년 5월 첫 탈북 3개월 만에 체포돼 북송됐다. 이듬해 다시 탈북을 감행했다가 한 달도 안 돼 체포됐다. 감시 속에 살던 B씨는 2004년 기적적으로 다시 탈북에 성공했다. B씨의 동생 C(20ㆍ여)씨는 2001년 “쌀밥과 고깃국을 먹고 싶어” 탈북했으나 네 번이나 중국인들에게 팔려 다니며 수모를 겪었다.

전화 교환수로 일하던 D(25ㆍ여)씨는 2004년 중국에 건너간 뒤 유부남에게 반강제로 팔려가 혹한 감시 속에 살아야 했다. E(20)씨는 학생이던 1999년 탈북, 중국에서 ‘꽃제비 생활’을 했다. 평양의 인민학교 교사였던 F(36ㆍ여)씨는 1999년 장사를 해보겠다고 나섰다가 인신매매단에 걸려 팔려다니는 몸이 됐다.

이들이 극적으로 미국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두리하나선교회 천기원 목사의 노력 덕분이었다. 중국의 탈북자를 돕던 천 목사는 3월 말 미국 허드슨연구소 마이클 호로위츠 연구원으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북한인권법의 산파 역할을 했던 호로위츠 연구원은 탈북자의 난민신청을 추진해 볼 것을 천 목사에게 권유했다.

천 목사는 중국의 선교사와 활동가 등을 통해 탈북자 6명에게 미국행 의사를 타진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는 미국행을 주저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음을 굳힌 이들은 지난달 3일부터 비밀리에 중국 남부의 모처로 이동했고 13일 국경을 넘어 수십㎞를 이동, 중간 목적지인 동남아 제3국에 도착했다.

천 목사는 지난달 17일 현지 미국 대사관에 이들을 인도하고 난민신청을 했다. 4일 뒤 미 국무부로부터 이들의 망명 허가가 떨어졌고 이들은 5일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천 목사는 “호로위츠 연구원과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 등이 적극적으로 도왔고,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관심을 표시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들은 곧 미국에서 자신들의 사연과 탈북 과정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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