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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존이 위험하다/ <下> 안전물 설치로 끝 '무늬만 보호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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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존이 위험하다/ <下> 안전물 설치로 끝 '무늬만 보호구역'

입력
2006.05.0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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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낮 서울 도봉구 월천초등학교 앞. 왕복 4차선의 붉은색 도로가 확 눈에 들어온다. 어떤 운전자라도 멈칫 할 수 밖에 없다. 바닥을 보니 ‘학교앞 천천히’라는 큼지막한 글씨가 씌어있다. 300㎙에 이르는 통학로는 안전 울타리와 경계 턱으로 차도와 완벽하게 구분돼 있다.

인적이 드문 시간에도 이 구간에서 신호 위반이나 과속을 하는 차량은 거의 없었다. 택시운전사 윤정신(46)씨는 “어린이 보호구역임을 모르는 운전자라도 다른 색깔로 포장된 도로가 나타나면 아무래도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학교가 지난해 11월 보강 공사를 완료한 이후 단 한 건의 교통 안전 사고도 없었다. 강성인(55) 교감은 “시설 확충과 함께 학부모회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계도 활동을 벌인 결과 안정 궤도에 올라선 것으로 보인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10년 된 스쿨존

정부가 ‘어린이 보호구역(School Zoneㆍ스쿨존)’을 만든 지 만 10년이 지났다. 여전히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지만 시행 초기에 비하면 어린이 보행권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진 게 사실이다. 특히 월천초등학교 등 일부 학교에서는 스쿨존을 성공적으로 운영해 제도 정착의 싹을 제대로 틔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쿨존이 어린이 교통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음은 통계로도 나타났다. 정부가 2003년‘어린이 안전 원년’을 선포하고 본격 정비 사업에 나선 이후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는 2003년 588건에서 2004년 529건, 2005년 349건으로 해마다 줄었다. 사업에 들어간 돈만 3,500억원이나 되고, 올해도 전국에 1,000 여개의 스쿨존을 지정ㆍ정비하는 데 1,82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제도 정착을 위한 물적 토대는 상당 수준까지 갖춰가고 있는 셈이다.

효율적 운영이 아쉬워

그러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스쿨존이 기대 만큼의 효과는 거두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이 펴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교통사고 비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인구 10만 명당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률이 4.1명이나 된다. 스쿨존을 부분 시행하고 있는 폴란드(3.5명)보다 많고, OECD 평균 2.2명에 비해서는 월등히 높다. 어린이 교통사고 대부분이 학교나 집 근처에서 보행 중 일어나는 사고 임을 감안할 때 결국 막대한 돈을 쏟아 붓고도 스쿨존 관리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획일적인 법 적용이 비효율을 낳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허 억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대상지의 입지 여건이나 자동차 통행량 등 주변 환경과 위험도가 모두 다른 데도 정부는 일률적인 규정에다 안전시설물의 구색만 갖추면 할 일을 다했다고 말한다”며 비판했다. 사정이 이러니 학교 당 2억원 안팎의 예산을 투입하고도 실제 기능은 유명무실한 ‘무늬만 스쿨존’이 나온다.

스쿨존 업무가 분산되어 있는 점도 통합적인 전략 수립과 운영 효율성을 가로막는 원인이다. 현재 스쿨존의 지정과 관리는 경찰, 예산 확보 및 시공은 지자체가 담당하는 이원화 구조로 되어 있다. 또 관련 시행규칙에는 필요 조치 사항만 간단히 언급하고, 시설물 규격과 설치 장소 등에 대한 통일된 기준은 없는 상태다.

지자체 별로 들쭉날쭉한 모양의 표지판은 스쿨존 홍보를 더디게 할 수밖에 없다. 실제 한국생활안전연합이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스쿨존의 핵심 규정인 ‘속도 제한(30㎞/h)과 주ㆍ정차 금지’ 내용을 제대로 알고 있는 운전자는 20%가 채 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스쿨존 내 법규 위반자에 대한 법적 제재 수단이 없는 점도 효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어린이 보호구역 내 교통위반 행위에 대해 50% 가중처벌한다’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지난해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

전문가들은 스쿨존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위험도에 따라 우선 순위를 정하고 예산을 차등 배분ㆍ적용하자는 주장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스쿨존 확대에만 집착하기 보다는 이미 있는 스쿨존 내 거주지 밀집 지역의 주차난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 보호구역으로서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더 급하다”고 말했다. 또 한 경찰서가 관내 모든 스쿨존에 대해 지도ㆍ단속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운영과 관리에 있어 학교의 역할이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도 공감을 얻고 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 외국 실태, 스쿨존 교통위반 벌금·벌칙 2배

세계 각국의 스쿨존은 제도와 기준은 간단하고 명쾌하게, 처벌은 엄하게 운영되고 있다.

미국은 스쿨존 설치 및 운영 기준이 주마다 다르다. 하지만 대원칙은 같다. ‘차량 통행이 어린이 보행 안전보다 결코 중요하지 않다.’

미국의 스쿨존은 기준이 각각인 표지판 및 시설물이 오히려 아이들과 운전자에게 혼란만 줄 수 있음을 감안해 교통 표지, 노면 표시, 신호기 등 최소한의 기준만 제시한다. 등하굣길(School Route)과 어린이 횡단보도는 반드시 확보토록 하되 교통량과 지역 특성 등을 고려해 운영은 유연하게 한다. 특히 스쿨존에 속도계(카메라)를 설치해 과속을 하면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일부 주는 스쿨존에서 교통 법규를 위반하면 일반 도로보다 2배의 벌금 및 벌칙을 부과하고 있다. 실제 필라델피아주에선 스쿨존 내 최고 시속(우리나라는 30㎞ 이내)인 17.6㎞를 넘으면 최고 500달러의 벌금(벌점 3점)을 부과한다.

독일은 우리와 비슷하다. 학교 주변 300㎙ 이내, 운행 속도도 30km이하다. 하지만 횡단보도의 녹색 신호등은 초당 0.5㎙로 우리(초당 0.8㎙)보다 길다. ‘스쿨존 사고는 무조건 운전자 과실’이란 표지판도 달아 운전자에게 경각심을 일깨운다.

영국은 스쿨존 제도는 없지만 학교 주변 제한 속도(약 32km), 구간별 차량 출입금지, 차량 감속을 유도하는 곡선도로(Chicken) 및 도로 폭 감소(Traffic Throttle) 등을 도입하고 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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