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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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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연꽃

입력
2006.05.0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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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도설(太極圖說)’로 유명한 북송의 대유학자 주돈이는 연꽃에 지극한 찬사를 바쳤다. 세상의 온갖 꽃들 가운데 유독 연꽃을 사랑하는 이유로 ‘진흙에서 나왔어도 때묻지 않고, 맑은 물에 씻기고도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었어도 겉은 곧고, 덩굴이나 가지를 치지 않고,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 맑고, 아름답고 정갈해 멀리 두고 볼 만하나 가까이 두고 희롱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꽃 중의 군자라고 할 연꽃을 제쳐두고 부귀의 꽃인 모란을 사랑하는 세태를 한탄하기도 했다.

■ 연꽃의 타고난 기질과 그에 대한 주돈이의 마음가짐은 유교적 가치관의 정화를 한꺼번에 가르쳐 준다. 요염하지 않음은 교언영색을 경계한 것이고, 속이 비었음은 이치를 궁구하는 데 막힘이 없는 것이고, 곧은 것은 지조이며, 덩굴이나 가지를 치지 않음은 난삽하거나 헝클어지지 말라는 뜻이다.

또 멀수록 맑은 향기는 바람 없이도 천리에 퍼지는 군자의 향기이고, 멀리 보는 것은 공자가 가르친 경외(敬畏)의 자세이다. 다만 사랑하는 이유의 으뜸으로 꼽은 ‘진흙에서 나왔어도 때묻지 않고’는 불교적 색채가 그윽하다.

■ 불교는 연꽃과 떼어 생각하기 어렵다. 석가모니가 탄생할 때 주위에 오색 연꽃이 가득 피어 연꽃 한가운데서 태어나듯 했다거나 석가가 가섭에게 법을 전할 때 연꽃을 들어보였다는 얘기가 모두 연꽃의 상징성에 기대고 있다.

속세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깨끗한 꽃을 피우는 연꽃의 이미지는 백련(白蓮)을 가리키는 범어 ‘푼다리카’를 옮긴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연화(蓮花)’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흔히 극락을 연꽃의 나라로 묘사하지만, 모든 사람의 티없는 불성이 꽃으로 활짝 피었으면 극락이 따로 있을 리 없다.

■ 연꽃은 맑은 아름다움과 함께 무엇 하나 버릴 게 없는 쓰임새가 있다. 식용이나 약용으로 널리 쓰이는 뿌리나 열매는 물론이고, 줄기나 잎도 생약으로 쓰인다. 꽃은 은은한 온기를 띠어 곤충들의 지친 날개를 어루만져주기도 한다.

속세의 혼탁함을 이기는 스스로의 정화능력도 놀랍지만, 화사한 꽃과 물방울이 구르는 넓은 잎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기고, 배고픔과 질병에까지 손길을 내민다. 세상이 혼탁할수록 그 속에서 피어나는 청정함과 따스함은 더욱 빛난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 그가 전한 마음의 연꽃 한 송이씩을 받아 보자.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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