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문들은 정권이 끝날 때마다 그간 보도하지 못한 비화(秘話)를 연재하고 그걸 책으로 묶어내는 서비스를 충실히 해오고 있다. 재미도 만만찮으니,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그런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 “왜 이런 이야기가 대통령의 임기 중에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다. 정권이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는 걸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내부 사람들이 왜 그간 내내 침묵하다가 정권이 다 끝나고 나서야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느냐 하는 것이다.
● 자기성찰 없이 상대편 흠집내기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내부비판’을 금기시하는 우리 풍토다. 정적(政敵)으로 간주하는 세력을 비판하는 건 쉬울 뿐만 아니라 속된 말로 남는 장사다. 윗사람에게 잘 보일 수 있고 열혈 지지자들로부터 뜨거운 지지까지 얻어내 정치 기부금까지 늘어난다.
반면 내부비판은 윗사람과 열혈 지지자들을 화나게 만든다. 도대체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 그런 비판을 하느냐는 공격까지 받아야 한다. 내부비판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현실 인식도 내부비판을 주저하게 만든다. 게다가 진정성이 결여된 채 자기 홍보용으로 하는 내부비판도 없지 않아 내부비판을 하고 싶어도 그런 오해를 받을까봐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게다.
그밖에 또다른 이유들이 있겠지만, 이래저래 내부비판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달리 말해 한국정치엔 자기교정 메커니즘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정치세력이건 자신이 직접 잘 해서 점수 따는 건 드물고 상대편의 타락과 과오의 반사이익을 챙겨 득세하는 게 정치의 법칙처럼 돼 버리고 말았다. 양쪽 모두 자기성찰이 없이 상대편 흠집내기에만 열중해 번갈아가며 과실을 챙기는 ‘시소 게임’ 비슷하게 돼 버렸다.
정치만 그런 건 아니다. 지식인 사회도 비슷하다. 요즘 ‘뉴라이트’ 지식인들의 공세가 만만치 않다. 그들의 비판엔 말 되는 말이 많다.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의 탄생에 기여했거나 그 정권들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지식인들이 내부비판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데다 일부는 권력에 도취된 모습마저 보였으므로 비판받을 건수는 많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식인마저 자기성찰은 외면한 채 정치권의 ‘시소 게임’을 흉내내는 것 같아 보기에 안타깝다. 뉴라이트 지식인들은 반대편 지식인들의 질을 매우 낮게 평가한다. 그런 자부심은 좋지만, 그런 질 낮은 지식인들이 득세하기까지 라이트ㆍ뉴라이트 지식인은 뭘 하고 있었던 건지 그 점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선행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뉴라이트 지식인의 주요 비판 메뉴 중의 하나는 포퓰리즘 비판이다. 일부 개혁ㆍ진보파 지식인들이 대중을 선동해 반(反)지성주의를 확산시키고 지식인 사회를 사실상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섬뜩한 비판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뉴라이트는 집권을 원치 않는다는 뜻인가? 대중을 그렇게 일개 지식인 집단에 의해 놀아나는 무지몽매한 집단으로 여기면서 그들의 표를 얻어 집권하겠다니 모순 아닌가?
뉴라이트 지식인의 사부 격인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치열한 사상전’을 예고하면서 “다시 피가 끓는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 것 같다. ‘부정과 투쟁의 시대’는 한번으로 족하다. 이른바 ‘좌파 386’의 그런 특성은 시대의 업보이지, 새롭게 벤치마킹할 건 아니다.
● 뉴라이트 지식인들도 닮은 형태
민주주의를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면, 대중에 대한 혐오부터 거둬들이고 그들로부터 차분하게 신뢰를 얻으려는 ‘긍정과 설득’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면 그 반대편 지식인들도 무언가 배우는 게 있어 과거의 과오를 성찰해나갈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에 필요한 건 내부비판과 성찰이지 피가 끓는 분노가 아니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강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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