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사학법 양보권고가 여당에 의해 정면 거부되면서 짜고 치는 고스톱이니, 탈당을 위한 계산된 수순이니, 차기 대선을 위해 일찌감치 당의 입지를 넓혀주려는 희생타라는 등의 다양한 분석이 이뤄지고 있다. 정치게임에 능한 노 대통령이 뻔한 카드를 생각 없이 던졌을 리 없다고 보는 시각이다. 분석은 갈리지만 이번 일로 해서 정권의 레임덕 현상이 가속화하리라는 전망은 대체로 일치한다.
● 집권 초기부터 끊임없는 레임덕 논란
김영삼 대통령의 레임덕은 임기를 1년쯤 남겨둔 1996년 말 노동법 날치기 처리로, 김대중 대통령의 레임덕은 1999년 옷로비사건으로 시작해 역시 임기 1년 여를 앞두고 2001년 표면화한 아들 비리로 본격화했다. 레임덕 시기가 점차 빨라지고 있는 셈이다. 가뜩이나 현 정권의 국가운영에 대한 불만이 누적돼가고 있는 판에 임기를 2년 가까이나 남겨둔 이 상황은 지지자가 아니어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따져보면 그다지 예민할 필요가 없다. 2004년 헌재의 수도이전 위헌결정 때부터 나온 레임덕 얘기는 지난해 재보선에서 여당이 연이어 참패를 당했을 때 절정에 달했다. 여당의 공식회의에서 “대통령이 신(神)이라도 되느냐?”는 따위의 항명성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더구나 지지도 40% 이하를 레임덕으로 보는 게 일반적인데 노 대통령의 지지도는 애초부터 이 선을 넘어본 적이 거의 없다. 심지어 스스로 “임기 시작부터 레임덕이었다”고 말한 적도 있다. 2004년 4월 총선으로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될 때까지의 여소야대 기간을 그렇게 본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도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지방선거 이후에는 대선국면이 형성될 것이므로 시기가 별로 앞당겨진 것도 아니다.
주목할 것은 일상화한 레임덕이 아니라 그 원인이다. 노 대통령의 레임덕은 재직시점이나 주변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앞장서 계기를 만들어왔다는 점에서 앞서의 경우들과 다르다. 이는 번번이 상대방이 받기 힘든 화두를 불쑥 던짐으로써 결국 실패를 상대방이나 상황논리로 돌리는 심리적 방어기제의 작동으로 볼 여지가 크다.
그러나 악의적 시각을 배제하자면 지난해 연정론이나 이번 사학법 양보론 같은 것들은 국정경험이 쌓이면서 대통령으로서 느끼는 국가적 책임감이 특유의 순진성(혹은 치기)과 결합한 발상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이번 일도 부동산대책입법과 비정규직법 등 정말 중요한 민생법안을 위해서라면 오랜 논란으로 이미 상당수준의 경고효과를 거둔 사학법은 포기할 수도 있다는, 그야말로 대승적 사고가 동기일 가능성이 크다.
주변에서 늘 안타까워하는 이런 진정성을 인정한다 해도, 문제는 언제나 목표가 설정되면 에두르지 않고 곧바로 저지르는 방식이다. 이는 개인이 아닌, 국가경영을 책임지는 최고지도자로는 지극히 요령부득이고 무책임한 것이다. 지지자들의 이탈을 감수한 한미FTA 추진 등에서 보듯 그는 초기의 편협한 인식에서 탈피, 점차 폭 넓고 책임 있게 사고하는 국가지도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구체적 실현수단을 별로 고려치 않는 무모한 접근방식에는 별로 변화가 없다. 그가 타협과 양보를 말하는 것은 큰 변화지만, 자신의 원칙과 생각에 대한 타협과 양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이전과 동일한 것이다.
●변치 않는 일방형 접근방식이 더 문제
누누이 지적됐듯 노 대통령이 촉발해온 정치사회적 갈등이나 정책추진의 미숙함은 많은 경우 원칙이나 구상의 실현을 위한 설득과 조정, 상대방의 입장이나 정책시스템 작동원리 등에 대한 이해 같은 디테일이 떨어지는 데 따른 것이다. 늦었지만 국가지도자로서 지금부터라도 보완해야 할 덕목이 이런 것이다. 어차피 일상적 레임덕을 겪어온 만큼 새삼 그것에 신경 쓸 일은 아니다. 더욱이 정치적 이상의 구현은 몰라도, 이해와 조정 등을 통해 국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일은 레임덕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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