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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복원/ 미륵사지석탑 해체복원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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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복원/ 미륵사지석탑 해체복원 현장

입력
2006.05.03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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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가 바른 콘크리트 185만톤 뜯어내

1,400여년 전 백제 무왕(武王ㆍ600~641 재위) 때 세워진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 보수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지유물전시관 현장에는 탑에서 해체한 700여개의 부재(돌)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해체 작업을 위해 세운 가설 덧집 내부에는 6층 규모인 미륵사지석탑의 1층 부분만 남아있고 나머지 5개 층은 해체작업을 마쳤다.

국내 석탑 가운데 가장 크고 고대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미륵사지 석탑은 본래 9층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7세기 이전에 붕괴돼 1915년 일본인들이 무너진 부위를 콘크리트로 보강해, 해체작업 전까지는 무너진 상태로 있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998년 1월 석탑 안전진단 결과 붕괴 위험이 있다고 판단, 이듬해 4월 해체 및 정비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80억원의 예산을 세우고 보존팀과 고건축팀 12명으로 미륵사지석탑보수정비사업단을 구성, 2001년 10월31일 해체를 시작했다.

해체 작업은 당초 2005년에 완료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02년 3층을 해체했을 때 연구원들은 탑 속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돌이 쌓여 있는 등 탑의 규모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때부터 작업기간은 무한정 늘어나기 시작했다. 현재 남아있는 탑 1층의 작업량만 해도 이미 작업을 완료한 2~6층 것보다 몇 배나 많은 규모다. 현재로선 남은 해체 기간을 예측할 수 없는 상태다.

미륵사지석탑 보수정비사업단 김덕문(47) 박사는 “단순히 탑을 해체하고 복원하는 작업이 아니라 축조 기술과 양식, 역사적 사료, 무너진 상태 등 모든 내용을 조사해야 한다”며 “1,400여년 만에 조사하는 것이어서 기록도 없는데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석탑이라 그 만큼 작업량도 엄청나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탑을 해체하기 전 1~2.5톤 짜리 부재의 위치와 형태를 디지털 측정장비로 정밀 조사하고 기록한다. 이어 안전벨트로 부재를 묶고 기중기로 내린다. 곧바로 부재의 중량을 달고, 사진을 찍고, 정확한 도면을 그린 다음 세척을 한 뒤 표식을 붙여 적재장으로 옮긴다. 전통 석조각공들은 지금까지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발라놓은 콘크리트를 무려 185톤이나 뜯어냈다.

전통 드잡이공인 홍정수(68ㆍ문화재수리기능자 제190호)씨는 “37년간 석탑 해체와 운반 일만 해왔지만 이렇게 규모가 큰 탑은 처음”이라며 “현재 부재 700여개를 해체했는데 1층까지 마치면 3,000개는 족히 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연구원들은 지금까지 사진을 3만장이나 찍었고 1,500여쪽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단순히 사진 한 장 찍는데도 20분 이상 걸리는 더딘 작업인지라 연구원들조차 언제 해체가 끝날지 섣불리 말하지 못한다. 당초 석탑 해체 정비사업 계획은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 동안 진행될 계획이었지만 이 기간 내에 해체 작업이라도 끝낼 수 있을 지 미지수다. 이에 따라 사업단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사업기간 연장을 요청할 계획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복원 방식에 대한 결정은 아직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상태다. 다만 해체 전 상태로 복원, 6층 석탑으로 완벽한 보수, 9층 석탑 복원 등 3가지 방안만 세우고 있을 뿐이다.

학생들을 데리고 해체ㆍ복원 작업 현장으로 수학여행을 온 안영휘(60) 전남 구례고 교사는 “일본인들이 석탑을 보수하면서 함부로 다루었다”며 “해체 작업을 보면서 석탑의 웅장함에 놀랐고, 빨리 원상 복귀해 아름다운 자태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익산=최수학기자 shchoi@hk.co.kr

■ 700개로 조각난 돌부처 '퍼즐맞추기'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사무동 1층. 제법 육중한 철제 문을 세 번이나 밀고 들어가면 보존과학실이다. 복도 좌우로 흩어진 20여개의 방. 중앙박물관의 귀중한 유물을 치료하고 되살리는 ‘문화재 종합병원’이다.

금속보존실에서는 한 직원이 스탠드 전등을 켠 채 현미경에 눈을 맞추고 메스로 무엇인가를 조심스럽게 긁고 있다. 조그만 청동그릇의 이물질을 제거하는 중이다. 청동그릇은 30여 개로 조각나 있었는데 각 조각의 부식물을 떼내고 염소를 제거한 뒤 강화 처리를 거쳐 그릇을 완성한다. 떨어져 나간 부분은 같은 색상으로 따로 만들어 붙인다.

현미경을 사용하는 이유는, 이물질이 워낙 미세해 20배 정도 확대해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원의 자세가 너무나 진지하고 조용하다. 같은 사무실의 박학수 연구원은 “현미경을 들이대고, 제대로 됐는지 확인 또 확인해야 하는 지라, 이 일 오래 하면 성격이 아주 까다로워진다”고 말했다.

석제보존실에서는 인턴 직원 김태은씨가 부서진 불상 조각들을 맞추고 있다. 불상이 산산조각 나는 바람에 조각이 700개나 된다. 하지만 김씨는 이미 조각의 위치를 다 파악하고, 마치 퍼즐 맞추기를 하듯 조각을 하나씩 제자리에 끼워 넣고 있다. 그래도 엉뚱한 자리에 집어넣을 수 있어 쉽게 떼어낼 수 있는 목재용 접착제를 쓴다.

토기ㆍ도자기보존실에서 요즘 다루고 있는 유물은 ‘백자청화동체중문호’라는 작은 항아리다. 주둥이 부분이 떨어져 석고로 붙인 뒤 금을 입혀놓았는데, 석고를 하얀 색 에폭시 수지로 대체하는 중이다. 기술적으로는 크게 어려울 것이 없지만, 황현성 연구원은 “문화재 가치를 가격으로 따질 일은 아니지만, 도자기류는 고가여서 보존 처리 과정에서 깨지지 않도록 특히 주의한다”고 말했다.

특히 어려운 부문은 서화다. 강형태(52) 보존과학실장이 “서화 보존은 10년은 해야, 일을 조금 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할 정도다. 벌레가 먹거나 종이가 접히는 등 쉽게 훼손되지만 이를 복구하려면 한지의 성질과 표구법을 알아야 하고, 바래고 훼손된 부분을 감쪽같이 감추는 채색 기술과 예술적 감각도 갖춰야 한다. 서화실이 다른 방에 비해 좀 눅눅하게 느껴지는 것은, 건조하면 종이가 찢어질 수 있어 늘 습도 50% 이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목제, 목칠공예품, 벽화 등도 박물관의 보존ㆍ복원 분야다. 각 문화재의 성격과 상태, 재질 등을 분석하고 온도와 습도, 빛, 대기오염물질 등에 대한 조사도 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현재 12분야에 13명이 보존 처리 및 복원 작업을 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은,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와 더불어 국내 최고 수준의 보존ㆍ복원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중앙박물관이 보존ㆍ복원 업무를 시작한 것은 1975년. 박물관 개관(1945년)후 30년이나 지나서였다. 그만큼 관심이 적었다고 볼 수 있는데, 지금은 첨단 장비도 갖추고 기술도 뛰어나다.

박물관은 현재 15만여 점의 유물 중 1만2,000점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중인 유물은 다 점검ㆍ보존 처리를 거친 것이다. 보존 처리를 잘 했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부식되고 금이 가기 때문에 이 일은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1년에 약 1,000여점을 보존 처리하는데 이는 유럽의 4, 5배 수준이다. 강형태 실장은 “문화재를 잘 보존해 복원하면 그 문화재의 가치가 크게 올라간다”며 “박물관 관람객이 전시 유물을 보고 즐거워할 때 우리도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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