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도 맛이 있다. 맵고 칼칼한 게 있고, 숭늉처럼 구수한 게 있다. 마시멜로처럼 달보드레한 게 있고, 뭔가 복잡한 레시피의 이력을 품은 듯 낯선 맛의 시가 있다. 김사인 시인의 시는, 입에는 익지만 어딘가 낯선, 그래서 자꾸 입맛을 다시게 만드는 맛을 느끼게 한다. 19년 만에 그의 두 번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창비, 6,000원)이 나왔다.
그의 시는 화려하지 않으면서 정교하고, 멋 부림 없이 기교로 충만하다. 가령 이런 시. “자동차 굉음 속/ 도시고속도로 갓길을/ 누런 개 한 마리가 끝없이 따라가고 있다//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말린 꼬리 밑으로 비치는/ 그의 붉은 항문”(‘귀가’ 전문)
운동과 수배와 도피생활이라는 시인의 이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대체로, 그의 이름의 어감처럼, 순하게 푸근하고 애잔하며, 자주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그러면서 문득문득 서늘한 느낌을 주는 것은 시종 ‘비장의 허장성세’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집 전체를 통틀어 가장 격한 시어를 품은 구절이라 할 만한 한 연, “묻건대/ 이러고도 生은 과연 싸가지가 있는 것이냐!”(‘치욕의 기억’에서)라고 할 때 우리는 자못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그의 시들이 품어 안은 이들은 하나같이 ‘새끼발가락’ 같은 사람들이다. “몸의 제일 후미진 구석에 엎드려”있지만 “백만년 인류사를 배경으로 갖는”, 그래서 “유구한 상처의 넋들이 그 숨죽인 다소곳함 속에 서려 있는” 존재들. 그들의 꼼지락거림이 “희망의 절망적인 상징처럼” 느껴져 눈물까지 핑 돌게 만드는 이들이다.(‘새끼발가락과 마주치다’) 지난 해 시인에게 현대문학상을 안긴 시 ‘노숙’도 그런 맥락에 놓여있다.
▲ 노숙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였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최윤필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