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이후의 서양 문화사가 두 권의 책으로 압축됐다. 하드 커버에다 1, 2권 각각 873, 625쪽의 분량만으로도 지레 기가 죽을만도 하다. 그러나 일단 펴들면, 책은 대단한 흡인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재미 프랑스 사학자 자크 바전의 ‘새벽에서 황혼까지’는 500년 동안 서양에서 벌어진 문화사적 사건을 정리한 책이다, 루터, 에라스무스, 몽테뉴 등 근대 사상가로부터 제임스 조이스, 앤디 워홀 등 현대 작가까지 두루 포섭하면서, 서양사의 핵심을 파고 든다. 당대 일류 지성들의 목소리를 당시의 정치적ㆍ사회적ㆍ예술적 의미망과의 연관 아래 음미하고, 그 의의를 묻는다. 그것은 동시에 간과돼 왔던 역사를 재발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 시기 서양사를 종교 혁명, 군주 혁명, 자유주의 혁명, 사회주의 혁명 등 네 가지 혁명으로 나누고 통찰하는 저자는 현재를 읽는 논리를 제공한다. 그 속에 해방, 개인주의, 원시주의, 추상, 분석, 세속주의, 과학만능주의 등 오늘날의 서구를 지배하는 키워드가 잠재해 있다는 것이다.
문화사라는 거대한 강에서 특정 사람이나 작품의 영향이 체감되는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라고 바전은 믿는다. 책에서 구체적 연도를 거의 볼 수 없는 것은 문화사 특유의 완만하고도 거대한 흐름에 대한 신념이다.
서양이 다섯 세기에 걸쳐 이룩한 것을 반 세기 조금 넘는 기간에 이루려 애쓰고 있는 한국은 서양이 겪어 온 변화의 방정식을 제대로 체득했는지, 옮긴이 이희재씨는 장문의 글을 통해 묻고 있다. 책은 그러므로 한국인들에게 거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2000년, 지은이가 93세이던 때 나온 이 책은 거장만이 쓸 수 있는 대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럴 때, 장수란 과연 미덕이다.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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