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포천시의 포천일고 국어교사 김문규씨(39)와 갈월중학교 영어교사인 그의 아내 박언진씨(36)는 독특한 교육관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교사부부다. 우선 현직 공교육 교사이면서 두 아들 건우(8)와 선우(5)를 대안학교에 보내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우리 식구는 다섯 명이에요. 아빠 엄마 형 나 그리고 바람이." 막내 선우가 가족을 소개한다. 이상하다. 분명 두 형제라고 들었는데 왜 한 명이 더 있을까? '바람이'는 이웃이 선물한 진돗개와 풍산개의 잡종 개다. 갓 태어난 강아지 때부터 함께 자랐기에 선우는 자연스럽게 가족으로 안다. 그래서 학교에 제출하는 '친구알기' 설문지에도 '바람이'를 친동생으로 소개해 3형제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포천시 소흘읍 무림리에 위치한 이들 가족의 아담한 30평 규모 단독주택. 실내로 들어갔다. 거실에 소파 대신 널찍한 평상과 TV가 있고 안방엔 컴퓨터가 눈에 들어온다. 여느 가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TV를 보지 않은지 5년이 넘는다고 한다. 이따금 아빠의 영화감상용 모니터라고 한다. 컴퓨터도 아이들 학교숙제 때문에 마련했다. 가족이 모두 컴맹 수준이다. 가만 지켜보니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TV나 컴퓨터에 관심이 없다.
최근 유행하는 개그맨의 유행어와 게임에도 시큰둥하다. 대신 해질 때 까지 마당에서 자전거 타기와 축구 놀이 그리고 '바람이'와 어울려 신나게 뛰어 노는 일에 열심이다. 아빠 엄마가 퇴근해오자 온 가족이 뜰의 벤치에 앉아 통기타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등 대부분 오래된 포크송들이다. 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따라 부른다. 저녁을 먹은 건우는 동화책을, 선우는 그림그리기에 몰두했다. 정말로 TV와 컴퓨터는 거의 개점휴업상태다.
5년 전 경기 부천시에서 이 곳으로 이사한 것은 대안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아빠를 닮아 노래를 좋아해 가수가 꿈인 건우는 현재 초등과정인 어린이학교를 2년째 다니고 있고, 선우는 유치과정인 꾸러기학교에 4년째 다니고 있다. 보통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하는 것이 상식적이건만 이 부부는 왜 역행을 선택 했을까? 포천의 대안학교는 강남을 능가하는 엘리트 교육을 지향하는 특수한 학교일까? 아니다. 일반적인 교과공부보다는 자연관찰, 놀이중심의 체험 학습 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학교다.
교사 가족의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강원대 사범대 노래패의 리더였던 김문규씨는 92년 부천고등학교에서, 박언주씨는 95년 부천 부명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들의 만남은 전교조 합법화 이전에 경기지부 부천지회의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노래모임에서 이뤄졌다. 박씨는 "처음 만났을 때 김광석, 조동진, 김민기의 노래를 좋아하는 음악취향은 기본이고 생각과 감성적인 부분까지 이렇게 비슷한 남자가 있나 싶었다. 대학시절 탐독했던 책들조차 상당부분 똑같았다."고 웃는다.
그러나 사정은 어려웠다. 특히 경제적으로. 김씨는 아내를 고향 춘천으로 데려가 자신의 성장기를 알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주었다. 또한 이청준의 소설 '눈길'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자수성가해 결혼한 막내아들과 단칸방조차 없이 살게 된 고향 어머님의 애증을 이야기한 소설이다. 아내 박씨는 "남편과 시어머님에 대한 연민의 정이 느껴져 눈물이 펑펑 쏟아졌어요. 숨기고 싶었을 가족의 불우한 과거를 다 보여주는 그런 솔직함이 마음에 들어 제가 먼저 결혼하자고 했지요."라고 웃는다.
96년 결혼을 했다. 집안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소형아파트를 얻어 맨바닥에서 살림을 시작했다. 신혼시절 젊은 김씨는 적극적인 전교조 활동을 했다. "당시 너무 신경을 써 머리가 빠질 만큼 삶의 대안을 찾지 못해 힘들었던 시기였다." 이들 부부는 환경과 생태에 관한 잡지 '녹색평론'을 정기 구독해 읽었다.
희망으로 가야 할 자신들의 미래가 경제개발 논리에 따른 환경파괴로 희생양이 될 것 같았다. "해답도 없이 미래에 대해 두려움만 가득했다. 앞으로 환경은 특권 소수의 행복을 위해 더욱 파괴되고 다수의 삶은 황폐화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자식 세대의 불행에 대한 고민 때문에 한동안 아이를 갖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랴. 사랑했기에 자연스럽게 첫 아이 건우가 태어났다.
맏이가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된 2001년. 우리 사회는 IMF를 거치면서 거센 구조조정 바람으로 명예퇴직이 줄을 이었다. 서울에 살던 지식인이나 중산층들이 서울을 떠나 귀농하고 카나다, 뉴질랜드 이민 바람까지 불었다. 주변에 이민가는 사람들을 보자 고민스러웠다. 그때 미국의 비판적 지식인 헬렌 리어링, 스캇 리어링의 책 '조화로운 삶'을 읽었다.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버몬트라는 숲에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저작활동과 손님을 맞는 생활을 하다 간 그들의 친환경적인 삶이 한줄기 빛처럼 정답을 제시하는 것 같았다.
둘째까지 생겨나자 자식들 교육이 중대문제로 떠올랐다. 주위의 유치원은 하나같이 공부만 시키는 것 같았다. 아내 친구의 권유로 공부보단 놀이를 중시하는 포천의 대안학교인 꾸러기학교를 알게 되었다. 당시 출산휴가 중이던 박씨는 1년간 휴직을 했다. 대안학교 교사로 일하며 생소한 대안교육을 직접 체험했다. 그리고 확신을 가지게 됐다. 두 사람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마음으로 시골로 이사를 결심했다. 시골학교의 경우 서울로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젊은 교사들이 대부분. 헌데 10년 이상의 경력교사가 도시에서 자원을 해서 부임하자 ‘무슨 사고를 쳐서 왔는가?’ 주변 교사들은 이해를 못했다.
가장 큰 변화는 건강. 부천 전교조 분회장을 맡았던 김씨는 “산적한 현안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매일 술을 마셔 건강이 나빴는데 여기서 MTB를 국내 도입한 박규동씨(60)와 이웃하면서 건강이 좋아졌다.”고 한다. 박언진씨는 “남편 건강도 좋아지고 아이들도 학교를 좋아해서 가족 모두 행복해졌다. 솔직히 부천에서 살았으면 치열하게 살며 아파트도 구입하고 돈을 좀 벌었을 텐데(웃음)….”
부부는 어린 시절의 과도한 지식교육보다 충분히 놀게 해주는 것이 더 의미 있는 교육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친지들이 난리다. 부모가 중요과목 교사들이면서 어떻게 애들에게 한글도 안 가르치냐며. 하지만 이들은 요지부동이다. “우려와는 달리 초등학교 2학년 격인 건우는 6살에 한글을 읽었고 쓰는 것은 7살쯤에 스스로 깨우쳤다. 둘째 선우는 현재 글자 10개도 모르지만 그림으로 표현을 한다. 그런데 생각의 틀이 짜여 있지 않아 자유롭고 창의적이다. 도시아이들은 대부분 장난감, 컴퓨터를 줘야만 논다. 이곳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다 놀이기구로 만드는 게 다른 것 같다.”
최근 대안교육이나 홈스쿨링을 시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의 행정지원까지 고려될 만큼 대안학교에 대한 일반의 인식도 변하고 있다. 그래서 관계기관의 간섭과 더불어 소수만을 위한 또 다른 엘리트 사교육장으로의 변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우리나라는 의무교육제여서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과태료 100만원을 내야 한다. 그래서 건우는 정규초등학교에 일단 입학을 해 일주일만 다녔다. 입학식 때의 느낌을 건우에게 묻자 “그 학교는 왜 처음 학교 간 날, 줄 세우고 가슴에 손을 얹게 하고 애국가를 부르게 하는지 몰라요.”하며 의아해 했다. 김씨는 “공교육 학교에서는 앞으로나란히와 줄을 못 맞춘다고 야단치고…. 그건 어느 학교 어느 선생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공교육이 안고 있는 본질적 시스템의 문제다. 그래서 손을 맞잡고 인간터널을 만들어 빠져나가는 것이 행사의 전부인 대안학교의 입학식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현직 공교육 교사 자녀의 대안학교 입학은 이율배반적이지 않은가? 부부 각각의 대답이 궁금했다. 김문규씨는 “처음엔 솔직히 고민을 했다. 헌데 대안교육은 내 자식에게 특별한 지식을 가르치고 엘리트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입시를 위해 어린 시절을 저당 잡기 보단 내 아이들에게 미래에 무엇이 돼야 행복한 것이 아닌 무엇이 되든 행복한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기 위한 선택일 뿐”이라고 말한다. 박언진씨는 “공교육을 다니면서 행복해 하는 학생도 많다. 근데 대안교육을 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국가정책에 반하는 사람들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대안학교나 홈스쿨링을 하는 사람이 많은 유럽의 선진국들처럼 다양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의 생활을 만족스러워했다.
그렇다면 대안교육을 받으려면 어느 정도의 경비가 필요할까? “공교육 시키면서 학원 보내는 것 보다 돈이 덜 든다. 여유 있는 사람들의 엘리트교육이라 생각하면 오해다. 지금 교육의 문제점을 인식하는 부모들만이 경제적으로 여유는 없지만 보낸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힘든 저소득층은 시도할 수 없다는 것이 대안교육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김씨 부부는 “공교육과 대안교육이 대립하기보단 정보를 교환하는 상보적 관계로 발전해 교육의 다양성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김씨는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뭘 하려하면 ‘대학가서 하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공부하려고 대학 가려는 학생은 거의 없다. 결국 대학졸업장이라는 기득권만이 목표인 것 같다.”며 현재의 입시위주 교육을 못마땅해 한다. 부인 박언진씨도 “한국 교육과정의 문제는 수능과 더불어 배움이 끝나버리는 형식이다. 공부하면 입시밖에는 없다. 그래서 우리 부부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은 ‘죽을 때 까지 배워나가는 것이 배움이고 이는 곧 즐거움’임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김문규 박언진 부부는 불확실한 미래를 좇으며 현재의 행복을 담보 잡히는 삶이 아니라 지금 가족 모두가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을 바란다. 진정한 자유인의 가정이 이런 모습일까.
글·사진=최규성편집위원 ks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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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들아, 오늘은 가수 김광석에 대해 공부하자"
5월 1일부터 시작하는 중간고사를 앞 둔 21일 금요일 경기도 포천일고 3학년 9반 교실. 5교시 국어시간이다. 드르륵, 문이 열리면서 개량한복에 장발을 한 특이한 외모의 남자가 CD플레이어를 들고 들어온다. 아이들은 ‘우리 학교 꽃미남 김문규 국어선생님’이라고 귀 뜸 해준다.
정말 선생님 맞아? 남녀공학이라 분위기가 밝은 것인지 ‘자유인’ 김교사의 수업 시간이라 그런지 시험을 앞둔 교실 분위기치곤 화사하고 밝다.
김 교사는 “오늘은 포크가수 김광석의 노래”라고 소개를 한다. “이 가수 아는 사람?” 모두 “몰라요”하며 함박웃음을 터트린다. 요절 가수 김광석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더불어 “신나는 요즘 댄스 곡도 좋지만 시적인 아름다운 가사를 담은 대중가요도 많으니 한번 들어보자.”며 재생 버튼을 눌렀다. 아이들의 표정에서 기대감이 넘쳐 난다.
노래는 화창한 봄날에 어울리는 포크 송 ‘꽃’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느려서 졸려요!”, “지난 주 김민기보다 더 노래를 잘해요”, “듣기 좋아요”등 반응이 다양하다. 가끔 “요즘 유행하는 댄스음악을 들려 달라”는 학생이 있을 땐 작은 문화적 충돌을 경험한다. 의도를 가지고 곡을 준비하는데 단순히 노래 하나 듣는 것으로 오해하는 아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노래 감상 후 곧바로 “이번 중간고사에서 국어 과목은 평균 70점 이상이 나올 거라고 학교 측에 말했다”고 하자 사방에서 “우~”하는 원망 섞인 탄성이 터져 나온다. 함박웃음을 머금은 김교사는 “자 이제 시험이 코앞이니 수업해야지~.”
김 교사는 대학 3학년 때 강원대 사범대 노래패 ‘한울림’을 창립했다. 대학시절에는 집회현장에서 교사가 되서는 전교조 노래모임에서 민중가수로 활약했다.
선동적인 노래보다 가사가 아름다운 포크송에 더 매료됐다. 그래서 그런 노래들을 4.19의거 같은 의미 있는 날엔 이렇게 학생들에게 들려준다. 교사발령 이후 지금껏 해오는 수업 방식이다. 공부와 연관을 지어야 하기에 노래뿐 아니라 그날의 느낌이나 교과에 도움이 되는 시의성 있고 좋은 시를 낭송하고 해설하는 시간도 마련한다.
포천일고의 교내신문과 교지 지도교사를 맡기도 했던 김 교사는 “이런 수업을 시작한 이유는 노래를 좋아하기에 좋은 노래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욕심과 문학교사로서 절감하는 아이들 감성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사실 그 나이 때가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풍부한 때다. 인지교육도 중요하지만 감성과 관련된 예능교육이 교육과정 안에서 부족하다고 생각돼 본 수업 전 잠깐 노래 한 곡, 시 하나를 함께 듣고 낭송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튿날인 22일 토요일 오후 8시,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난 의정부의 전원카페 ‘딱정벌레’의 야외공연무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란 타이틀로 열린 음악애호가들의 공연 무대에 김 교사가 올라와 열창을 한다. 앙코르가 터지면서 관객들이 환호한다. 어제 학교에서 본 그 국어선생님 맞나? 포크가수로의 완벽한 변신이다.
김문규씨는 이런 정식 공연무대 뿐 아니라 포천 의정부 지역의 병원을 돌며 입원환자들을 위한 무료 노래봉사를 해온 이 지역의 숨은 노래봉사자다. “정식 가수요? 에이, 저는 그저 노래를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제 노래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줄 수 있다면 제일 행복할 것 같아요.”
글/사진=최규성 편집위원 ks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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