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자가 없다.’
검찰이 27일 정몽구 현대ㆍ기아차그룹 회장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함에 따라 정 회장의 빈자리를 누가 채울 수 있을 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정 회장의 그룹 장악력이 워낙 커 이를 대신할 만한 인물이 마땅치 않다는 점에서 현대차호(號)는 당분간 선장 없이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겉으로만 보면 정 회장이 자리를 비우게 될 경우 정 회장의 공백을 메울 가장 유력한 후보는 김동진(56) 현대차 총괄 부회장이다. 김 부회장은 ‘수시 인사’로 대표이사들도 하루 아침에 옷을 벗어야만 하는 현대ㆍ기아차그룹에서 2000년 현대차 사장으로 승진한 뒤 줄곧 정 회장을 모신 측근중의 측근이다.
2004년에는 불선 대선자금 제공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적도 있어 정 회장의 신임이 두텁다. 서울대 기계공학과 출신의 전문 엔지니어로 국방연구소에서 ‘K1탱크’ 국산화를 주도하다 1978년 정 회장에 의해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 영입됐다.
이전갑(59) 현대ㆍ기아차 기획총괄담당 부회장도 주목된다. 그는 19일 정 회장이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그룹의 대국민 사과와 사회공헌 방안 발표를 주관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정 회장 부자가 갖고 있는 1조원 상당의 글로비스 주식 헌납, 그룹 윤리위원회 설치, 기획총괄본부의 대폭 축소 등도 내놓았다. 현대모비스 구매실장 등을 거친 그는 기획총괄본부 이외에도 환율과 유가 문제 등에 대처하기 위해 신설한 경영전략추진실과 감사실도 맡고 있다.
설영흥(61) 현대ㆍ기아차 중국사업담당 부회장은 최근 크게 확대되고 있는 현대ㆍ기아차의 중국 사업을 통합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 빼 놓을 수 없다.
정 회장은 현대ㆍ기아차그룹에 대한 검찰의 고강도 수사 와중에도 중국에서 열린 베이징현대차 제2공장 기공식에 참석할 정도로 중국 사업에 승부수를 걸고 있다.
특히 설 부회장은 정 회장이 어렸을 때부터 막역한 사이로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ㆍ기아차가 중국에서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데에는 화교인 설 부회장의 인맥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3명의 부회장 모두 정 회장의 역할을 대신하긴 힘들 것이라는 게 회사 설명이다. 이는 매일 아침 6시30분이면 서울 양재동 본사로 출근, 각 계열사 사장들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고 현안을 챙기는 정 회장의 경영 스타일에서 유래한다.
현대차에서는 2인자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3명의 부회장 모두 서로 고유 영역이 있어 그룹 전체를 아우르긴 힘들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김 부회장과 이 부회장이 대외 업무와 대내 업무를 나눠 투톱 체제로 현대차호를 이끌 것이라는 분석도 내 놓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현대ㆍ기아차그룹은 일단 굵직한 신규 사업은 전면 중단한 채 당분간 각 본부장별로 일상적인 업무만 처리하는 방향으로 비상경영체제를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관계자도 이날 “본부장 전결로 가능한 일상적인 업무만 진행할 뿐 회장의 결심이 필요한 사안은 전면 보류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각 계열사들도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는 사업은 진행하지 못하고 현상 유지만 하는 보수경영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몽구 회장 특유의 불도저경영과 공격경영이 그의 부재로 인해 당분간 주춤거릴 수밖에 없게 됐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