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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음식 - 박재은의 음식 이야기 - 시어머니의 쑥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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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음식 - 박재은의 음식 이야기 - 시어머니의 쑥 선물

입력
2006.04.29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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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불문, 나이불문, 결혼을 한 여자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얘깃거리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시(媤)’자(字)에 관한 문제들인데, 시 어머니를 비롯하여 시 아버지와 시 동생, 시누이, 시 할머님, 시 고모님, 시 조카 등에 관한 것이다. 이제 막 부모의 간섭을 벗기 시작한 성인이 또 다른 부모, 또 다른 형제자매가 생긴다는 것이 쉬운 일은 분명 아닐 터. 그래도 어쩌랴, 결혼식과 함께 나에게는 시집 식구들의 기쁨에 웃고 슬픔에 울어야 할 의무가 주어지는 것인데.

영화 속 주인공도, 나의 지인들도 ‘시어머니 편하다’는 사람 없고, 그 껄끄러운 관계에 대한 해답은 누구도 제시를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어버이날에도 ‘시’부모님을 뵈어야 한다면, 그래서 벌써부터 걱정이라면 여기 ‘쑥 이야기’를 한번 들어 보시라.

♥ 쑥

“어머님, 봄나들이 가실래요?”라고 며칠 전 여쭈던 나는 사실 지나는 말씀이었다. 오랜만에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는데, 달리 드릴 말씀도 없고 해서 꺼낸 얘기였던 것이다.

사실 생각을 해보면 그렇다. 나를 낳아주고 길러 준 친정 엄마와도 며칠 만에 통화를 하면 무슨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 지 생각해야 할 만큼 각자의 생활이 다른데, 하물며 이제 만난 지 몇 년밖에 안 된 시 엄마와 뭐 그리 할 일이 많을까 말이다.

아무튼 내가 꺼낸 ‘봄나들이’ 얘기가 발단이 되어 우리 부부는 어머니를 모시고 가까운 곳에 다녀오기로 했다. 어디에 제일 가보고 싶으신지 여쭈니, 어머님은 당신의 엄마가 잠들어계신 공원을 말씀하셨다.

4년 전 돌아가신 남편의 외할머니를 모신, 교회의 작은 동산으로 가자고 하신 거다. 서울 외곽으로 빠져서 동두천을 끼고 돌아 또 한참을 달려야 했던 가는 길에, 내 속에서는 ‘좋은 곳을 다 두고 왜 하필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 공원이람.’하고 생각이 든 게 사실이다.

도착을 했고, 어머님의 엄마를 뿌린 그곳의 작은 비석에는 시 외할머님의 존함과 생년이 적혀 있었다. 어머님은 “엄마, 몇 년 만 더 사셨으면 손주며느리가 맛있는 거 해 줬을 텐데 왜 가셨수.”혼잣말 하시며 기도를 시작하셨다. 순간 나도 숙연해져서 어머님 곁에 서 있었는데, 어머님의 코끝이 빨개지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바로 그 모습이 나의 외할머니 산소를 찾을 때의 내 엄마와, 내 이모들과 너무나 닮은 모습이어서 나는 놀랐다. ‘아, 시어머니도 누군가의 딸이고 나나 내 친정 엄마와 다 같은 여자구나.’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다들 각자의 기도를 마치고 산을 내려오노라니 어머님은 뜬금 없는 제안을 하셨다. “아가야, 내가 이 봄날에 너에게 특별히 줄 것은 없지만 그래도 쑥이라고 갖고 돌아가게 해주고 싶다.”하시며 시누이랑 나랑 여자 셋이 쑥을 좀 뜯다 가자고 하신 거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요리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서울 토박이 처녀로 아파트촌에서만 자라서 쑥을 직접 뜯어 본 일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시 어머님이 먼저 쪼그려 앉아 뜯기 시작 하시는 것을. 치마폭 여며 앉아 나도 열심히 쑥을 뜯기 시작했다.

이해 못 할 쑥 뜯기를 십여 분, 내 몸은 더워지고 어머님은 눈물이 쏙 들어가시고 시누이는 쑥이 손에 잘 안 잡힌다고 너스레를 떨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 졌다. 여자 셋이 쑥 뜯는 모습이 뭐 그리 신기한지 남편은 연신 사진기를 들이댔고, 우리는 얼굴이 까맣게 탄 시골 아낙들처럼 깔깔 웃었다.

♥ 쑥 밥에 쑥 국

다음 날 아침 일어나니 솜사탕처럼 뭉실한 쑥 봉지가 눈에 먼저 뜨이고, 쑥 넣어 밥이나 지어봐야지 싶었다. 쑥 봉지를 헤집자니 야생 쑥 내음이 확 오르며 그 기운을 내게 뿜었다. 뿌리 직전에서 똑똑 따 낸 옹근 줄기들은 어머님이 뜯으신 것, 엉성하게 뜯겨서 자잘한 잎들은 시누이와 나의 작품들이니 밥에 넣을 쑥을 고르는데 벌써 웃음이 나왔다.

밥 짓는 동안 견뎌 낼 만큼 잎이 튼실한 것들로 골라 넣고 밥을 올린 다음, 들깨가루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들깨 쑥국을 준비했다. 무랑 조개로 낸 국물에 된장 연하게 풀고, 슬쩍 데쳐서 들깨 가루 묻힌 쑥을 넣었더니 그 냄새에 남편이 잠을 다 깼다. “어제 그 쑥이야?” 하면서 내게 다가오는 남편의 얼굴에도 웃음이 배어났다.

“여자 셋이 쑥 뜯는 모습이 어찌 그리 제각각이냐”며 그는 놀리고, “그만하고 국간이나 봐달라”고 나는 보채면서 우리의 하루는 쑥처럼 푸릇하게 시작되었다. 찹쌀을 좀 섞어서 지은 쑥 밥은 솥을 열자마자 쑥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질 정도로 향기로웠고, 양념장 곁들여 입에 넣으니 그 온기는 우리 시 엄마를 닮은 봄맛 그 자체였다.

칼슘과 엽록소가 풍부해 여자들에게 특히 좋은 쑥은 많이 먹을수록 좋단다. 많이 먹어 봐야 봄 한철이면 끝이 나는 것. 튀겨먹고, 멥쌀가루 묻혀서 쪄먹고 하여 한 봉지 빨리 다 먹으면 시 어머님께 또 쑥 뜯으러 가자고 졸라야겠다. 내친김에 친정 엄마한테도 쑥 버무리 한 접시 들고 가서 “봄이라고 직접 뜯은 쑥 선물 주는 시어머니 본 적 있수?” 하고 자랑 해야지. 시 엄마도, 엄마도 나도 시누이도 다 같은 여자니까 쑥 많이 먹고 오래오래 예쁘게 살게 해달라는 기도가 올 봄 내내 맴돌 것 같다.

EBS 요리쿡 사이쿡 진행자 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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