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때도 직원 월급을 올려줄 정도 였는데 환율이 이렇게 떨어진다면 거의 희망이 없습니다.”
26일 서울 북가좌동의 ㈜세현물산. 플라스틱 샘플제품 제작기계 소리를 배경으로 쇼핑백을 접고 있는 10여명 직원들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이 업체는 일본과 독일, 스페인 등에 쇼핑백, 플라스틱 휴지통 등을 제조ㆍ수출, 짭짤한 수익을 올려 왔다.
그러나 최근 원ㆍ달러 환율이 940원대로 급락하면서 대기업보다 ‘방어막’이 떨어지는 세현물산 같은 중소 기업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김민수(50) 상무는 “지난해초 환율이 1,200원 정도였을 때는 20% 정도 마진이 남았는데 1년 반 사이 환율 하락폭이 마진보다 커져 요즘은 울며 겨자먹기로 수출하고 있다”며 “유럽 쪽 바이어들은 우리보다 30% 이상 단가가 싼 중국 업체 쪽으로 속속 발길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여년 간 공장을 돌렸지만 영업 사원 기름값도 못 대준 것은 처음”이라며 “관리비를 아무리 줄여도 단가를 맞출 수 없어 중국 쪽에 공장부지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콜럼비아, 에콰도르 등 중남미 국가에 산업용 플라스틱 수지를 연간 1,000만 달러 가량 중계 무역하는 서울 양재동 T사의 김모(55) 사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물건을 먼저 수출한 뒤 3, 4개월 후 대금을 받는 연불(延拂) 수출을 하는 우리로서는 환율하락에 속수무책”이라며 “환투기 세력들의 농간에, ‘환율방어를 포기했다’는 등 외환 당국자들의 경솔한 발언이 겹쳐 환율 예측이 불가능해지면서 수출기반이 무너지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대기업은 환율 하락에 대비해 환 변동보험에 가입하는 등 대비를 하고 있지만 수만~수십만 달러 단위로 수출하는 중소업체의 경우 70% 이상이 아무런 환리스크 관리를 하지않아 충격은 더 클 수 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재무구조가 불투명한 중소기업의 경우 환변동보험 가입에 필요한 신용평가를 받기 어려워 보험 가입에 소극적인 상황” 이라며 “환변동보험 가입절차를 단순화하고, 장기적으로 중소기업의 수출시장을 개척해주는 등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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