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농아인)에 대한 취재는 당초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의사 소통이 큰 문제였다. ‘말이 안 통하면 글로 쓰면 되겠지’ 하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메모 쪽지를 주고 받는 방식으로는 한 시간 꼬박 인터뷰를 해봐야 원고지 4~5매 분량의 이야기를 듣기도 힘들었다.
취재에 뛰어든 지 2주가 지나서야 한국농아인협회의 도움을 얻어 농아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때부터는 힘든 취재에 대한 불만이 쑥 들어갔다. 국가와 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농아인들의 고통이 일반인의 상상을 훨씬 뛰어 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소리의 벽에 갇힌 채 국가와 사회의 무관심이 중첩된 사각지대에 버려져 있었다. 농아학교에서 조차 수화를 제대로 못하는 교사가 태반이 넘었다. 수화통역사를 둔 병원이나 관공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어렵게 구한 직장에서도 ‘말이 통하지 않으니 조직 문화를 해친다’며 쫓겨나기 일쑤였다.
목소리가 없는 그들에게는 사실상 삶의 모든 순간, 모든 공간이 장애였다. 그들은 ‘우리의 ‘손짓’에 단 한번 만이라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지만 우리 사회는 아예 그 쪽으로 눈길을 돌리지 않고 있다.
농아인에 대한 편견은 가족들에게도 두텁게 드리워져 있었다. 상당수가 자녀ㆍ형제ㆍ부모의 장애를 감추고 싶어 했다. 가족 나들이 때 혼자 집을 지켜야 했고, 다른 식구들과 따로 밥을 먹는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한 농아인은 “형제들도 나를 종 부리듯 했다”며 눈물을 보였다.
차별과 소외가 사회에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우리 사회의 무관심을 일깨우고, 이들에 대한 배려를 촉구하는 기사를 쓰면서도 솔직히, 기자는 이 사실이 더 가슴 아팠다.
사회부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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