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에 대한 조사가 끝남에 따라 한 달간에 걸친 현대자동차에 대한 검찰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 돼 사법 처리만을 남겨두었다. 이제 관심은 정몽구 회장 구속 여부에 모아지고 있다. 국내 2위 대기업의 총수라는 비중 때문에 구속해야 한다는 의견과 선처하자는 의견이 맞서 검찰 내부뿐 아니라 일반 국민 사이에서도 뜨거운 공방을 낳고 있다.
● 현대차 글로벌전략 타격 우려
흥미로운 사실은 구속론이나 선처, 즉 불구속론 모두 그룹의 주요 현안을 직접 결정하는 정 회장의 경영스타일을 그 근거로 삼는다는 점이다. 검찰은 “본인이 다 알아서 하는 기업(채동욱 대검수사기획관)”이기 때문에 사법적 책임도 정 회장이 져야 한다는 논리다. 반면 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해 선처를 호소하는 의견 역시 “정 회장이 없는 현대차는 생각할 수 없다(협력업체 대표)”는 것이 첫번째 이유다.
국내 선도적 그룹이, 세계 무대를 누비는 글로벌기업이 특정인 한 사람에 의해 경영이 좌지우지된다는 사실은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런 스타일은 개인보다 조직의 힘에 의해 움직이고, 손을 더럽혀야 하는 일은 오너 대신 전문경영인이 알아서 처리하는 삼성의 스타일과 자주 비교가 된다.
어쨌든 나는 불구속 수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현대차가 저지른 기업비리를 두둔하기 때문이 아니라 기업이 처한 상황의 심각성 때문이다. 세계 5위 자동차그룹을 지향하는 현대차는 최근 글로벌 생산체제를 갖추기 위해 모든 역량을 올인한 상황이다. 올해만 해도 미국 앨러배마공장에 이어 기아차 조지아공장, 현대차 체코공장을 착공하고 인도와 중국2공장 증설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동차 산업은 세계 최대기업 GM의 몰락이 보여주듯 누구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터다. 그런 만큼 현대의 글로벌 확장전략은 도박이나 다름없다. 폴란드 체코 등에 무리하게 투자했다가 무너진 대우자동차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정 회장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는 협력업체의 탄원서에 무려 5만 명이 서명한 이유도 그런 위기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구속을 주장하는 의견도 충분히 수긍이 간다. 기업의 어려움이나 경제에 미칠 영향을 빌미로 선처를 한다면 기업의 비자금 조성 관행은 영영 막을 수 없다거나, 재벌이든 서민이든 법 앞에선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렇다. SK 분식회계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비자금을 조성하고, 삼성의 편법상속이 공분을 사고 있는 가운데 노골적으로 변칙상속을 시도한 구시대적 행태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불구속이라고 처벌을 하지 말자는 뜻은 아니다. 사법적 심판은 철저하게 하되 정 회장이 화급한 경영현안을 챙겨가면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자는 것이다. 법정신은 원칙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요소들을 감안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인 같은 중죄에도 살해동기 같은 정황이 중요하게 고려되는 법이다.
● 불구속 상태서도 단죄는 가능
현대자동차가 국가경제에 미치는 기여도나 현재 처한 경영상황의 시급성과 그를 구속할 때 얻는 사회적 이득을 비교하면 무엇이 합리적인 선택인지 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법적으로 따지더라도 검찰 수사가 마무리된 마당이니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오히려 이번 사건에서 검찰이 구속 여부를 판단하는 잣대가 현대차 자체가 아니라 이전에 있었던 다른 재벌사건과의 연관성이 크게 작용하지 않을까도 우려된다. 즉 삼성과 두산 사건때 온건한 처벌을 내린 데 대한 부담감이 정 회장 구속여부 결정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차의 경우에는 어떠한 변수보다 경제에 미칠 파장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믿는다. 기업의 비리는 철저히 단죄해야 하지만 구속만이 그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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