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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엄 R&B' 가요계 장악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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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엄 R&B' 가요계 장악 왜?

입력
2006.04.2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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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요계에서 인기를 얻는 방법.

‘워우~ 워우’ 하는 애드리브 때문에 일명 ‘소 목소리’ 창법으로도 불리는 R&B 보컬을 잘 소화하는 가수들로 그룹을 만든다 - 미디엄 템포에 발라드 멜로디를 얹은 노래를 발표한다 - 조폭이 등장하고, 결국 주인공이 죽는 뮤직비디오를 제작한다. 단순화한 것이긴 하지만, 요즘 국내 인기 가요 대부분은 이 공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가요계 휩쓴 미디엄 R&B

이 세가지 요소를 고루 갖춘 SG워너비는 지난해 최고 음반 판매량을 기록했고, 김종국과 플라이 투 더 스카이 역시 미디엄 템포의 R&B로 높은 인기를 누리며 지상파 TV 오락 프로그램의 단골 손님이 되기도 했다.

디지털 음원 시장으로 가면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 주 온라인 음원 사이트 멜론의 주간(17~23일) 다운로드 순위<표 참조> 를 보면, 미디엄 템포의 R&B 곡들이 10위권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최근에는 아예 각각 ‘여자 SG워너비’, ‘여자 브라운아이드 소울’을 표방한 씨야와 브라운아이드 걸스 등이 나와 ‘원조’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블루 오션인가, 블랙 홀인가

가수들도 TV 오락 프로그램에 나와 망가지거나 연기 겸업을 해야 살아남는 요즘, 미디엄 템포의 R&B는 노래 실력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시장이다. 이 때문에 이 장르가 불황에 빠진 가요계에서 ‘블루 오션’ 역할을 한다는 시각도 있다.

바이브, 가비 앤 제이 등은 TV에 나오지 않고도 디지털 음원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고, 장혜진 같은 중견 가수도 이 장르를 통해 복귀에 성공했다. 특히 가요계 관계자들은 미디엄 템포의 R&B가 30대 이상의 음반 소비층에게 어필한다는 데 주목한다. SG워너비의 소속사인 GM기획의 권창현 실장은 “SG워너비의 ‘죄와 벌’은 뮤직 비디오도 복고풍으로 꾸민 데다, 디너쇼를 열고 리메이크 앨범을 내는 등 기성 세대의 취향에 많은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반면 가요계 획일화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이사는 “SG워너비풍의 노래가 차트를 독식하고, 뮤직 비디오도 천편일률적이다. 이렇게 발전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면 가요계의 경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디엄 R&B 독식의 배경

미디엄 템포 R&B의 독식 현상은 현재 국내 가요계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올 1ㆍ4분기에 10만장 이상의 음반을 판 가수는 이수영과 플라이 투 더 스카이, 단 둘 뿐일 정도로 음반 시장은 몰락했다. 반면 디지털 음원 시장은 지난해 4,000억원대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 시장의 상당부분은 여전히 미니홈피의 배경음악(BGM)과 벨소리ㆍ컬러링에 의존하고 있다.

미디엄 템포의 R&B는 음악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면서 BGM으로 편안하게 듣기에 좋다는 점에서 디지털 음원 시장에서 매우 유리하다. R&B 외에 임정희의 ‘사랑아 가지마’ 등 발라드 곡들이 디지털 음원 차트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닮은 꼴 양산의 끝은?

대중의 취향에 맞는 특정 장르의 인기몰이를 무턱대고 탓할 수야 없겠지만, 이 같은 현상이 가요계의 획일화, 더 나아가 창의성의 실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동 통신사가 좌지우지 하는 디지털 음원 중심으로 가요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면서 ‘닮은 꼴 가요 양산’이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익명을 요구한 가요계 관계자는 “디지털 음원 사업자들은 시장에서 팔리는 곡들을 원하고, 우리도 당장 돈이 되는 음악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다른 장르를 시도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미디엄 템포 R&B의 전성 시대는 음악이 독자적 산업으로 자생하지 못하고 이동 통신사의 부가 서비스나 mp3 플레이어 시장의 부속물이 된 현실을 서글프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음악 평론가 박준흠 씨는 “현재 가요계 구조는, 고정 팬층을 중심으로 음반 판매 수익의 비중이 큰 싱어 송라이터에게 치명적”이라면서 “가요계의 미래를 밝히는 창작의 샘인 이들을 살릴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명석 객원기자 lennone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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