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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암묵지'를 공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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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암묵지'를 공유하자

입력
2006.04.2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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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될진 모르겠지만,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공통된 과오 중의 하나는 이전 정권의 암묵지(暗默知)를 무시한 것이다. 세 정권 모두 하늘을 찌를 정도로 자부심이 강한 나머지 이전 정권과의 차별화에 주력한 탓이다. 각자 자신이 어떤 점에선 원조(元祖)임을 내세우고 싶은 허영심도 적잖이 작용했다.

정권 차별화는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국정 운영의 대부분은 연속성을 갖는 것이고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과는 무관한 것이다. 따라서 이전 정권의 경험을 실천 가능한 지식으로 만들어 활용하는 건 꼭 필요한 일이다.

● YS·DJ·盧정부 前정권 경험 무시

‘암묵’이란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암묵지는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지식이다. 예컨대, ‘손맛’이나 ‘솜씨’를 구체적으로 명문화하기는 어렵다. 암묵지는 도처에 널려 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암묵지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식의 장식(裝飾) 기능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암묵지는 무시되고 있지만,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일본의 성공 비결 중의 하나로 바로 이 암묵지의 공유를 들고 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암묵지를 갖고 있는 사람은 그게 자신의 경쟁력이기 때문에 남과 공유하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암묵지 공유에 대한 적절한 보상 체계가 이루어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그룹 내에선 암묵지의 전도사를 자임하고 나섰고, 그밖에 성공한 많은 기업들이 암묵지 활용을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정작 암묵지가 필요한 건 행정인데도 여태까지 그 수많은 장관과 지방자치단체장들과 공기업 사장들 중 그 누구도 자신의 암묵지를 후임자는 물론 시민사회에 전달하기 위한 책 한 권 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자기 홍보용으로 내는 책들은 무수히 많아도 말이다. 심지어 사심이 없을 것 같은 시민운동가들도 자기 고생한 이야기는 책으로 내도 다른 시민운동가들에게 도움이 될 암묵지에 대해선 별 말이 없다.

허성관 전 행정자치부장관은 장관 재임 시절 매일 ‘국정일지’를 기록해 책으로 내겠다고 했다. 그는 정부 내에 기관장 간 인수인계 시스템이 없는 것이 문제라면서 장관에서 물러나면 민간 출신으로서 공직에 들어오는 후임 장관들에게 업무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과연 언제 책이 나올지 지켜보자.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도 재임 시절 직원들에게 “책상서랍, 개인용 컴퓨터, 머릿속에만 머물러 있는 훌륭하고 창의적인 지식정보들을 모두 꺼내어 서로 공유해야 한다”며 “활용가치가 높고 창의적인 지식정보를 제공한 직원에게 혁신마일리지를 부여해 인사고과에도 반영하겠다”고 했다. 자신의 공정거래위원장 재직 경험을 책으로 낼 뜻은 없는지 묻고 싶다.

최근 ‘서울신문’ 황경근 기자는 5ㆍ31 지방선거 후 “처음 시작하는 단체장들은 3선의 단체장들이 겪어왔듯이 많은 시행착오와 더러는 실패를 겪을 것”이라며 “떠나는 3선 단체장이 자신의 시행착오나 정책 실패에 관한 보고서를 만들어 뒤를 이을 초보 단체장에게 선물하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아주 좋은 제안이다.

●후임자에 노하우 전해주는 전통을

다만 동기 부여가 약해 얼마나 많은 3선 단체장이 그런 일을 할 지는 의문이다. 중앙ㆍ지방언론이 모두 나서면 좋겠다. 그간 언론은 ‘비화(秘話)’ 형식으로 정권의 암묵지를 조금이나마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해 왔는데, 그걸론 턱없이 부족하다.

사회적 암묵지를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해 연재한다거나 기자들이 직접 취재해 쓰거나 하는 방식으로 적극 개입하면 좋겠다. 신문이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암묵지가 공유되게끔 앞장서는 게 인터넷 시대에 생존하고 성공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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