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 출두 안팎
24일 이른 아침부터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주변은 북새통을 이뤘다. 경찰 200여명이 삼엄한 경비를 폈고 총수의 출석을 지켜보기 위해 현대차 임직원 100여명이 진을 쳤다. 변호사들도 직접 마중을 나와 격식을 갖췄다.
오전 9시55분. 소환 예정시간보다 5분 일찍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탄 검은색 승용차가 대검청사 구내로 들어왔다. 정 회장은 평상심을 잃지 않으려는 듯 평소처럼 6시30분께 양재동 현대차 그룹 사옥으로 출근해 기본적인 업무를 챙긴 뒤 시간에 맞춰 서초동으로 향했다.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혼잡한 대검 정문을 피해 뒷문으로 들어오려다 예정 시간보다 늦은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정 회장은 현대차 임원이 승용차 뒷좌석 문을 열기를 기다린 뒤 천천히 차에서 내려 임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곧 청사 현관쪽으로 몸을 돌려 느린 걸음으로 뚜벅뚜벅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모든 시선이 정 회장에게로 일제히 쏠렸다. 카메라 셔터 소리만이 요란했다. 잔뜩 굳은 표정 사이로 곤혹스러움이 묻어났다.
정 회장은 소감을 묻자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 검찰에서 성실히 답변하겠다”고 답했다. “비자금 조성을 지시한 사실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는 입을 닫고 청사 안으로 향했다. 1978년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으로 조사를 받은 지 28년만의 검찰 출석이었다.
정 회장 조사는 대검 중수부 1110호 조사실에서 진행됐다. 이 방은 조사용 책상 1개와 소파 1개가 놓여 있는 일반 조사실로, 화장실이나 욕실은 따로 없다. 검찰은 정 회장 조사에 앞서 이 방에 있던 침대를 치우고 소파를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의 아들 정의선 사장도 나흘 전 이 곳을 거쳐갔다. 조사는 주임 검사인 최재경 중수1과장과 이동렬 검사가 번갈아 혐의 사실을 물으면 정 회장이 ‘맞다’, ‘아니다’라고 확인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회장님 대우’는 기대할 수 없었다. 검사들과 함께 배달된 설렁탕으로 점심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정 회장은 한 그릇을 전부 비운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정 회장이 고령인 점을 감안해 2시간마다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검찰 관계자는 “정 회장이 어눌하고 발음이 불분명해 조사에 애를 먹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사량이 워낙 많아 자정이 넘어서야 조사를 마칠 수 있었다.
정 회장의 불투명한 앞날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온종일 뿌연 황사가 대검 청사를 휘감았다.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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