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구조개혁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대학 통ㆍ폐합이 만만치 않은 후유증을 예고하고 있다. 일부 통합 대학에서는 학적 변동 문제 등을 놓고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는 등 벌써부터 진통이 시작됐다. 지난 주에 있은 고려대의 출교 사태도 고려대와 고려대 병설 보건대의 통합이 단초가 됐다. 대학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부작용이 예상보다 클 것”이라는 당초의 우려가 현실화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부터 교육인적자원부가 몰아붙이고 있는 대학 구조개혁으로 통ㆍ폐합을 끝낸 대학은 모두 16곳. 국립대와 사립대가 각각 8곳이다. 국립대의 경우 충주대가 전문대인 청주과학대와 합쳤을 뿐 나머지 대학은 4년제 대학간 합병이다. 사립대는 사정이 다르다. 산업대와 전문대끼리 합친 동명정보대와 동명대를 빼면 모두 4년제대와 전문대간 통합이다. 고려대도 여기에 포함된다.
문제는 외형적인 통합에 가려진 내부 갈등이다. 이 중 학적 문제가 가장 뜨거운 이슈다. 밀양대와 합친 부산대는 학적 문제로 내부 갈등에 휩싸여 있다. 두 학교가 통합되기 이전 밀양대에 입학해 현재 부산대 밀양캠퍼스에 다니는 3,000여명의 재학생들이 부산대 학적을 요구하면서 6일부터 수업을 거부하고 있다.
학생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대학이 통합된 이상 동일 학적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반면 부산대측의 입장은 단호하다. 학칙상 밀양캠퍼스 재학생을 ‘부산대졸’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학측은 최근 개정된 국립학교 설치령을 근거로 들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폐지되는 밀양대는 2010년 2월28일까지 존속하게 돼 있어 설치령 시행 전 입학한 학생은 종전 규정을 적용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학생= 밀양대졸’을 적시한 부분이다. 학교측은 밀양캠퍼스 재학생이 부산대 졸업장을 따려면 학칙에서 정한 교양ㆍ전공 및 실용영어, 실용컴퓨터 학점 등 별도 교육과정을 이수토록 해 갈등 봉합의 여지는 남겨두고 있다.
다른 통합 대학도 표면화하지는 않았지만 살얼음판을 걷는 곳이 대부분이다. A대의 경우 승급(조교수→ 부교수 등)에서 탈락한 교수들이 정부에 집단 민원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통합 전 학교에서는 ‘1년에 국내ㆍ외 논문 3편 제출’ 규정이 없었는데 통합 이후에는 이 규정이 승급 심사 기준이 됐다는 이유에서다. 한 교수는 “최소한 1년 정도는 경과 규정을 뒀어야 했다”며 “합치자 마자 똑 같은 승급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횡포”라고 말했다.
고려대 처럼 총학생회장 투표권을 둘러싼 갈등이 재연될 소지도 얼마든지 있다. 4년제 대학과 합쳐진 전문대 재학생들에게 투표권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제2의 고려대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통합 사립대 관계자는 “고려대 사태는 교훈과 함께 숙제를 던진 셈”이라며 “학생들이 같은 요구를 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내부적으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교육부는 대학 통ㆍ폐합이 낳고 있는 각종 잡음 제거 방안에 골몰하고 있지만 묘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학적 부분의 경우 이미 국립학교 설치령에 규정돼 있고, 투표권 부여 논란도 학칙에 관한 문제여서 정부가 개입하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교육계에서는 구조개혁 칼자루를 쥐고있는 교육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대 기획처 관계자는 “대학 통ㆍ폐합의 후유증 치유는 대학에 맡겨서는 어렵다”며 “대학 경쟁력 강화라는 구조개혁 목표가 정착되기 위해서도 현실을 감안한 대책이 수립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진각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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