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평론가 고미숙씨가 책을 내면 반기는 이들(물론 이미 경험이 있는)이 의외로 많다. 경쾌한 수사나 치밀한 구성도 그렇지만, 시공을 현란하게 넘나드는 그의 사유 세계를 조금이나마 경험 혹은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직업명에서 직감되듯, 그가 하려는 이야기는 ‘단단’하다. 그러나 이야기법은 그렇지 않다. 완고한 주제를 다각도로 분해하고 재구성해 읽는 이와 유연하게 소통한다. 새삼 ‘글의 능력’을 느끼게 한다.
책의 제목은 마치 소설이나 시집 같지만 제법 난해한 인식을 다룬 인문서다. 부제가 ‘18세기와 근대, 그리고 탈근대의 우발적 마주침’이다. 전공자가 아니라면 눈으로만 읽고 말 주제다. 책 제목의 뜻풀이는 더하다. “푸코(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고고학적 탐사를 무기로 근대성의 지축을 흔든 ‘전사’라면, 연암 박지원은 그 위를 사뿐히 날아올라 종횡으로 누비는 ‘나비’다.”
책의 내용을 간단히(또는 아주 무식하게) 요약하면 “근대 안에서 근대를 사유하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비전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근대의 외부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 탐구를 위해 필요한 것은 근대를 ‘이질적인’ 상황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관찰한다.
이질적인 상황이란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등 18세기 우리 지성사와 19세기 초 근대계몽기의 지적 담론 그리고 푸코, 들뢰즈 등 서양 철학자들의 탈근대적 사유 등 세 가지 세계의 교차다.
저자는 이 겹쳐지는 사유의 세계를 ‘헤테로토피아’로 명명했다. 헤테로토피아 속에서 과연 근대의 표정은 어떨까. 책은 결론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냥 펼쳐놓기만 한다. 저자가 스스로 확인해 주듯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실험”이다. 독자는 전사처럼 신념을 갖거나, 혹은 나비처럼 자유롭게, 모든 근대적 고정관념이 제 정신을 가누지 못하고 허둥대는 헤테로토피아를 여행하면 된다.
책은 11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공간, 인간, 섹슈얼리티, 몸, 지식, 글쓰기의 순서로 진행된다. 각각의 이야기지만 또한 모두 논점을 공유한다. 각 장은 ‘입구’와 ‘출구’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시작되고 끝난다. 입구에서는 현재의 삶을 물음으로 던지고, 출구에서는 미래의 삶으로 가는 비전을 제시한다. 각 장의 처음은 ‘삶의 물음’에 대한 연암과 푸코의 생각을 비교해 놓고 잠시 준비할 시간을 준다.
연암과 푸코만 이 책의 주인공은 아니다. 허준, 노신, 달라이라마 등 탈근대의 비전을 제시하는 다양한 사상가는 물론, 옹녀, 변강쇠, 대장금, 욘사마 등 우리 시대의 눈이 다시 조명해야 할 인물들이 소통의 코드로 활용되고 있다. 그래서 책은 전혀 딱딱하지 않다.
저자는 이렇게 독자에게 바란다. “잘 다듬어지고 완결된 학술적 보고서가 아니라, 이질적인 말과 사물들이 충돌하는 활발발(活潑潑)한 다큐멘터리로 ‘감상’되기를.”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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