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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여론조작_매스미디어의 정치경제학' 엉터리 선거?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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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여론조작_매스미디어의 정치경제학' 엉터리 선거? 언론!

입력
2006.04.27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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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3월 엘살바도르에서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가 암살됐다. 평소 엘살바도르 군사정권을 강하게 비판했고 살해되기 직전에는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에게 군사정권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라고 편지를 보낸 그였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1면에 암살사건 기사를 4회 실었고 사설은 게재하지 않았다. 그 해 12월 엘살바도르에서 미국 여성 4명이 방위군에게 살해됐는데 뉴욕타임스는 이때 1면에 관련 기사를 3회 싣고 사설은 쓰지 않았다.

4년이 지난 84년 10월. 폴란드의 포피엘루슈코 신부가 경찰에 의해 살해됐다. 신부는 폴란드 공산 정부에 맞선 자유노조운동의 지지자였다. 뉴욕타임스는 이 사건을 1면에 10번이나 내보냈고 사설도 3회나 실었다. 무자비한 폭력이 공산 국가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거듭 강조한 것이다.

99년 1월 코소보의 리차크에서 세르비아인이 알바니아계 주민 40여명을 학살했고, 4월에는 인도네시아 군대가 동티모르 리키샤에서 주민 200여명을 사살했다.

리키샤에서 발생한 피해가 더 컸는데도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로스앤젤레스타임스, 타임, 뉴스위크 등 미국의 주류 언론이 내보낸 기사의 비율은 4.1대 1로 리차크 사건이 많았다. 대량학살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비율 역시 6.7대 1로 리차크 사건이 많았다. 사건 발발 당시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과 함께 유고 공격을 앞두고 있었고, 인도네시아는 미국의 우방국이었다.

자국의 이해에 따라 미국 언론이 사건을 키우고, 줄이는 이런 사례는 얼마든 더 있다. 쿠르드족 핍박도 이라크가 하면 대량학살이지만 우방국 터키가 하면 억압이다. 비우호국의 선거는 ‘엉터리’ ‘안 하느니 못한 선거’이지만 우방국의 그것은 ‘민주주의를 향한 전진’ ‘이전에 비해 공정한 선거’다.

미국 주류 언론의 이 같은 태도를 꼬집으면서, 언론이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한다는 신화가 틀렸다고 웅변하는 책이 현대 미디어론의 명저 ‘여론조작-매스미디어의 정치경제학’이다. 노암 촘스키 MIT 교수, 에드워드 허먼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가 언론의 속성과 생리를 살핀다. 88년에 초판이 나왔는데 한글 번역본은 2002년 개정, 증보판이다.

책은 미국 주류 언론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선전모델’(propaganda model)을 도입한다.

언론은 소유권, 광고주, 뉴스의 정보원, 언론보도에 대한 비판과 외압, 반공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고 지배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지배 이데올로기를 확산하는 선전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언론은 스스로 진실을 추구하고 정의를 수호한다는 허상에 잡혀 있는데 이는 선전 시스템이 언론 체내에 깊숙이 녹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시각을 바탕으로 책은 60년대 이후 미국이 제3세계에 개입한 주요 사건을 분석하고, 개정판 서문을 통해 북미자유무역협정과 멕시코 경제의 붕괴, 세계무역기구와 세계은행 등에 대한 저항 등 90년대 이후 사건에 대한 보도 태도를 추가하면서 선전모델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정치보다는 경제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진다는 것이다.

박광희기자 khpark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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