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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출판된 9,000원짜리 한 베스트셀러의 인터넷서점에서의 책값이다. 6,100원에서 7,695원까지 1,595원까지 차이가 난다. 출판 1년이 안된 책은 그나마 낫다. 오래된 책(1년 이후)값은 더 심하다. 30% 할인은 예사고 70%까지 가격을 후려쳐 판매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참다 못한 오프라인 대형서점들도 할인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영풍문고는 지난달 1월23일부터 3월20일까지 인기도서 1,000종을 선정해 30% 할인해주는 행사를 가졌다.
출판계는 이처럼 책 값이 제멋대로인 원인을 현행 도서정가제에서 찾는다. ‘출판 및 인쇄진흥법’의 한 조항으로 2003년 2월부터 5년 시한으로 시행중인 도서정가제는 인터넷을 통해 책을 판매할 경우 1할(10%) 범위 내에서 할인할 수 있도록 차별화했다. 그것도 모자라 경쟁적으로 경품, 마일리지, 끼워팔기, 배송비 무료 등 온갖 편법으로 책 값을 더 할인해 준다.
정가제의 대상도 문제. 발행일로부터 1년이 넘은 도서는 출판사와 유통업자(서점)간의 계약에 의해 정하도록 해 마음대로 할인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이창연 회장은 “교보문고 같은 대형서점도 1년 지난 책이 80%이상이다. 이를 일일이 구분해 할인과 정가로 구분해 판매하라는 얘기다. 또 책이란 비교적 수명이 긴 문화 상품인데 수명을 1년짜리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도한 목표 하나는 달성했다. 바로 인터넷서점의 활성화. 출판업계에 따르면 2000년부터 본격 등장한 인터넷서점은 지난 5년 동안 무려 271%에 달하는 외형적 성장을 해 출판시장 점유율 23%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소위 온라인 서점 빅4(예스24,인터파크,인터넷교보문고, 알라딘)의 경우 2004년부터 기존 오프라인 빅3(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의 시장점유율을 앞지르더니 지난해에는 무려 3,430억원의 매출액을 올리며60%까지 차지했다.
이 같은 성장의 원동력은 두말할 필요 없이 세계 최대의 인터넷 서점인 미국의 아마존을 모델로 한 가격경쟁력 우위정책. 이로 인해 할인 없이 인터넷서점 특성을 살린 프로그램 개발로 승부하는 일본과 달리 우리는 오직 책값 인하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서점이 분명 유통기술의 진보와 출판시장의 확대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부작용 또한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오프라인 서점이 지난 5년 동안 12%의 매출감소는 차지하더라도, 그 여파로 대구 제일서적, 강원의 청구서적 등 3,000여 개에 달하는 중ㆍ소서점들이 문을 닫았다. 출판 경향 역시 일부 대형출판사 말고는 살아 남기 위해 ‘좋은 책’ 보다는 할인으로 잘 팔릴 책에 매달릴 수 밖에 없어 독자들의 다양한 욕구에 맞춘 전문화, 세분화에 역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도서정가제가 책 값의 거품을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할인을 감안해 책 값을 올린다는 것. 영풍문고 고대우 종로점장은 3, 4년 전만 해도 5,000원에 불과하던 시집 한 권이 9,000원이나 하는 것을 그 예로 들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자료에 따르면 문학, 예술 만화, 사회과학, 철학 분야의 경우 2000년에 비해 20% 이상 책값이 올랐다. 김종화 반디앤루니스 이사는 “따라서 결코 할인이 독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악순환만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서점들이 이번 도서정가제 개정에 한발 양보한 것도 결국 이대로 가다가는 공멸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였다. 이른아침 출판사 김환기 대표는 “자국언어가 있는 국가는 모두 완전 도서정가제를 하고 있다. 우리도 당장은 어렵지만 지금처럼 과도기를 거쳐 장기적으로는 완전정가제로 가야 한다. 출판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그 나라의 지식문화산업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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