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에서 암을 치료한다고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물론 정신과에서 수술을 하거나 항암제를 쓰는 것은 아니며, 이들을 대체할 방법을 쓰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50세 J씨는 대장암을 진단 받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암 진단을 받고 나서부터 성격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J씨는 가장으로서 가족들에게 매우 다정다감하고 너그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암투병을 하는 동안 가족들에게 심하게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아지고, 우울해져 자포자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재발에 대해 불안해 했으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종양 재발이 발견되어 2차 수술과 항암 치료를 권유 받았을 때였습니다. J씨는 치료해도 소용없으니 절대로 치료 받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J씨의 짜증 불안 우울 불면 등의 증상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J씨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최근 암 치료의 의학적 기술 발달과 함께 이제는 암 환자들의 생존율이 과거에 비해 매우 높아졌습니다. 그 결과로 암의 완치뿐 아니라 암환자의 삶의 질 향상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기대보다 치료 성과가 좋은 경우가 생기다 보니 환자 스스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고 열심히 치료에 임하는 것이 치료 성패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으로 암환자 마음의 증상과 치료에 대한 관심 및 중요성이 늘고 있습니다. 이미 암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병원이나 암센터에는 거의 대부분 정신과 전문의가 있어서 전체 치료팀과 유기적인 협진 체제를 통해 암환자들의 정신 증상에 대해 전문적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암환자의 약 절반 정도가 치료가 필요한 우울, 불안, 불면 등의 정신 증상이 나타나며, 20% 정도에서는 꽤 심각한 주요 정신질환이 발병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암의 증상으로서 정신 증상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암환자들에게서 정신 증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암이라는 진단에서 오는 충격, 증상과 치료 과정의 고통스러움입니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죽음을 넘나드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 불안증, 불면증, 성격변화 등의 정신 증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종양 자체도 정신 증상을 유발합니다. 종양에서 호르몬을 생산하는 경우에는 과다한 호르몬의 영향을 받아 직접적으로 우울, 불안, 정신착란 등의 증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종양을 이기기 위해 우리 몸에서 생산해내는 신체 조절 물질들도 뇌신경계에 영향을 주어 다양한 정신 증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종양 자체가 뇌신경계를 침범하는 경우에도 우울, 불안, 섬망, 정신착란, 성격변화, 기억력 및 판단력 저하 등의 정신 증상이 유발됩니다.
항암치료에 의해서도 정신 증상이 유발될 수 있습니다. 몇몇 종류의 항암제는 꽤 심한 불안이나 불면증을 유발하지만, 암의 치료를 위해서 약을 쓰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이런 증상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렇게 정신 증상이 나타나는 암환자들에게는 정신과 협진을 통해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우울증, 불안증, 불면증, 통증 등의 증상은 치료중의 환자를 더욱 힘들게 합니다. 이러한 증상을 상담과 치료제를 통해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경우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을 훨씬 수월하게 견뎌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환자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치료 결과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마음가짐 하나로 우리 몸의 면역계와 내분비계가 얼마나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는지는 이미 잘 입증되어 있습니다. 과중한 스트레스가 면역계에 영향을 주어 암 유발에 기여한다는 가설도 있습니다.
절망하고 자신감을 잃은 태도를 극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암치료 효과를 극대화 하여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 윤세창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