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이 21일 외교 차관급 협상을 열기로 합의한 것은 일본의 동해상 우리측 배타적경제수역(EEZ) 수로측량 계획으로 촉발된 양국간 위기가 해결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양국의 협상은 일단 유명환 외교통상부 제1차관과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외무성 사무차관 사이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야치 차관의 방한 결정은 그 동안 공식, 비공식 접촉의 결과, 양측의 간극이 상당부분 좁혀졌음을 시사한다.
물론 일각에서는 야치 차관의 방한이 탐사 강행에 앞서 협상에 최선을 다했다는 인상을 안팎에 과시하기 위한 ‘명분 축적용’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사태 발생 후 줄곧 해양측량선에 대한 한국의 검색이나 나포가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변해온 점에 비추어 야치 차관의 방한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야치 차관의 방한이 20일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오시마 쇼타로(大島正太郞) 주한 일본대사 면담 이후 전격 결정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반 장관은 야치 차관이 17일 라종일 주일대사를 통해 제시한 사태해결을 위한 조건들에 답변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우리 정부의 답변을 신중히 검토한 끝에 야치 차관의 방한을 결정, 우리측에 제안했다는 전언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일본 정부가 우리측의 예상을 넘은 강경 대응에 상당히 당황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야치 차관이 그냥 놀러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양국 차관 협상 역시 그 동안 논의됐던 쟁점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측이 우리 정부에 제시한 조건은 독도 주변 해저지형의 한국어명칭 부여움직임 중단과 우리측 EEZ내 수로조사의 상호통보제도 도입, 해저지명 등에 대한 사전협의와 EEZ획정 협상 재개 등이다.
정부는 일본의 수로측량계획 철회를 전제로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자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반 장관은 오시마 대사와의 면담에서 해저지형명칭 변경은 조절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전협의와 EEZ획정협상 재개는 수용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고 한다.
반면 상호통보제도는 주권을 침해하는 성격을 갖는 만큼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양국 협상의 최대 쟁점은 상호통보제도의 수용여부가 될 전망이다.
이날 차관 협상이 결정되기까지 서울과 도쿄는 긴박하게 움직였다. 반 장관이 외교부로 오시마 대사를 불러 40여분간 면담을 가진데 이어 도쿄에서도 비공식 실무 접촉이 급박하게 진행됐다고 한다.
정부는 협상과 별도로 이날 유엔해양법협약상 강제분쟁 해결절차를 배제하는 선언서를 유엔사무총장에 기탁하는 등 일본에 대한 압박수준을 높였다.
이는 해경이 일본 측량선을 나포할 경우 일본이 국제재판소에 제소할 근거를 막기 위한 방어적 조치다. 하지만 우리도 이 조치로 일본이나 중국과의 분쟁을 국제재판소에 제소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게 됐다.
정부는 일본이 계속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EEZ 기점의 독도 변경, 신한일어업협정 효력 종결과 독도해역 군 배치 등 초강경 조치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또 미국에도 일본의 부당성을 설명하는 등 제3국을 통한 외교적 압박도 진행하고 있다.
권혁범 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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