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ㆍ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요리프로를 진행 중인 나의 요즘 고민은 다음과 같다. 엄마들이 원하는 것과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어떻게 절충 시킬 것인가.
아이를 낳아본 적 없는 키덜트 주부가 부모들의 마음을 알 길 없으니 주변에 캐묻거나 주부 잡지라도 들춰볼 밖에. 백과사전처럼 두툼한 주부 잡지를 탐독해보니 엄마들의 걱정은 ‘불량급식으로부터 우리아이 지키기’ 또는 ‘아이들을 위한 봄나물’과 같은 자잘한 식생활 문제들이 의외로 많음을 알 수 있었다.
가만있자…, 하고 내 초등학교 시절도 떠올려보니 야채를 싫어하는 남동생, 밥을 때 맞춰 먹지 않는 나 때문에 울 엄마도 많은 고민을 하셨던 것 같다.
⊙ 나물을 올린 불고기 버거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리를 궁리하다 보니 아이들의 입장에 대해 많이 연구를 하게 된다. 많은 이들이 요즘 아이들 영악하고 조숙하다고 귀띔을 해 주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20여 년 전의 모습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물론 인터넷이나 위성 방송의 보급으로 많은 정보를 가질 수 있고, 마음에 드는 남학생에게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로 쪽지도 보낼 수 있는 새로운 세대이지만 결국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남과 다른 것을 좋아하고, 제가 벌써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돌 스타에 열광하고, 놀이동산에 가고 싶고, 엄마가 따뜻했으면 좋겠고, 아빠와 대화가 통하기를 소망한다.
“우리 애는 식성이 남달라서 봄나물에는 손도 안 대거든.”이라고 단정 짓기 전에 여기 소개하는 버거를 한번 먹여보면 어떨까. 서양인들 부럽지 않은 체구를 가진 요즘 아이들, 고기를 정말 좋아한다. 결혼 전 나는 어느 패스트푸드점에서 오전 아르바이트를 잠깐 했었는데, 점심 전에도 버거를 사먹는 학생들이 많아서 깜짝 놀랐었다.
그때의 기억으로 아이들이 선뜻 손을 대지 않는 식재료를 먹여야 할 때 ‘버거’라는 음식의 형태를 많이 응용하게 되었든데. 예를 들어 ‘두부’를 먹여야 할 때에는 으깬 두부의 물을 쪽 빼서 빵가루, 다져서 볶은 양파 그리고 파슬리와 달걀 약간으로 간을 해서 탄탄한 반죽을 만든 다음 둥글게 빚어서 지져낸다. 햄버거용 빵에 지져낸 두부 패티(버거에 이용되는 납작한 고기 덩어리)를 끼워 넣고 야채랑 케첩을 곁들이면 두부 싫어하는 아이들도 잘 먹는다.
나물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아이와 친하게 만들 수 있겠다. 단, 다진 고기를 양념할 때 ‘불고기 양념’으로 통칭되는 설탕, 간장, 파, 마늘, 후추, 깨, 참기름을 조금씩 넣고 간을 맞추어야 한다.
고기반죽에 미쳐 간을 맞추지 못했다면 불고기 양념이나 시판되는 데리야끼 소스 혹은 우스터소스에 설탕과 맛 간장으로 간을 더해 살짝 졸인 다음 지져낸 패티에 끼얹으면 된다. 버거에 흔히 오르는 생양파와 토마토 대신 잘게 썬 봄나물을 살짝 얹어 주면 완성되는데, 이 때 햄버거 빵에 버터를 얇게 발라서 팬에 한 번 구워 준 상태라면 더 맛있다.
사실 이 메뉴는 밥을 잘 안 먹던 나를 위해 모친이 개발했던 20년 전 레서피를 훔쳐 낸 것이다. 불고기 버거는커녕 피자집도 낯설던 시대에 엄마가 선보이던 나의 도시락은 불고기 샌드위치로부터 치즈를 올려 녹인 스파게티까지 실로 다양하고 별났었기에 동급생들의 질투를 한 몸에 받았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달콤 짭짤하게 간을 해서 바짝 지져낸 패티를 고소하게 토스트한 빵에 끼우고 그 사이에 나물을 숨겨낸다면 학원을 돌고 돌아 지쳐서 귀가한 자녀들에게 멋진 선물이 될 것이다.
⊙ 나물치즈 토스트
식빵 한 장만으로 만들 수 있는 간식도 있다.
식빵을 밀대나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서 숨을 죽이고 그 가운데에 나물과 피자 치즈, 토마토소스를 올려서 도르르 말아주는 것인데, 팬에 지지거나 기름에 살짝 튀겨내든지 아니면 이쑤시개로 고정시킨 후 토스트용 오븐에 구워내면 된다. 치즈는 성장기 아이들에게 칼슘과 단백질을 공급하는 영양원이니까 칼로리는 다소 높지만 가끔씩 준비해주면 좋다.
‘나물과 치즈를 함께 먹으라고?’ 하면서 어이없어 하기 보다는 한번 만들어 보시라. “엄마가 너랑 나물을 먹으려고 토스트에 넣어봤는데, 한 번 맛 볼래?”하면서 아이와 대화를 시작할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카페인이 없는 과일 티백을 차게 우려내어 탄산 광천수와 섞어 마실 수 있게 준비하면 콜라 사이다가 필요 없게 된다.
내가 원고를 쓰거나 강의를 할 때 ‘울 엄마’의 이야기나 레서피가 하도 자주 등장해서 남편은 나를 ‘아직 마마걸’이라고 놀린다. 그만큼 엄마는 내 인생의 저 깊숙이 요지부동한 존재로 앉아계신 거다.
엄마가 패스트푸드를 못 먹게 해서 울었던 기억, 집에서 콜라를 대신하여 엄마와 마셔야 했던 녹차의 쓴 맛, 남다른 도시락을 싸주는 엄마 때문에 으쓱했던 순간들이 세昰?지난 지금 나의 식생활에 묵직한 ‘추’가 되었으니, 음식을 만들고 먹고 쓰는 것이 업인 내가 ‘울 엄마’를 밥 먹듯 찾는 것은 무리가 아니지 않겠나. 아이와 소통하기 위해 인터넷 대화를 배우는 엄마의 공익광고처럼, 색다른 요리 한 접시로 아이와 소통을 시도해보자. 그 맛과 그 기억은 아이의 평생에 걸쳐 향기를 뿜는 고운 선물로 남을 것이다.
EBS 요리쿡 사이쿡 진행자 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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